매년 봄이 되면 본가의 문을 두드리는 이가 있다. 그는 십여 년 전에 본가가 있는 아파트 청소를 맡아주시던 아주머니로, 매년 같은 시기만 되면 죽순이 든 봉지를 든 채 본가의 초인종을 누른다.
“죽순 사실랍니꺼?”
라는 물음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인터폰 화면을 통해 죽순 봉지를 든 아주머니를 본 엄마는 지갑부터 찾아 들고 나가 아주머니가 건네주는 죽순을 받아들고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돈을 아주머니께 건넨다.
아주머니가 청소 일을 하실 때도 엄마는 청소 중인 아주머니를 불러 차를 내어드리거나 아주 가끔은 목이 마른 아주머니가 집을 방문해 물 한 잔을 얻어 마시며 왕래를 하곤 했는데 아주머니가 청소 일을 그만두신 후로는 이렇게 매년 봄이면 죽순을 가져다주며 얼굴을 보는 사이가 되었다.
아주머니가 깨끗이 삶은 죽순은 값이 쌀 뿐 아니라 사실 아주머니가 아니면 이렇게 신선한 죽순을 쉽게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매번 엄마는 봄이 오면 죽순을 가지고 찾아올 아주머니를 기다리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결혼한 후부터는 항상 내 몫까지 구매해서 우리 집에 가져다주는데 그 덕에 나도 매년 봄마다 죽순을 먹을 수 있게 됐다.
내가 죽순을 즐겨 먹기 시작한 건 일본에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채소로 유명한 교토에서 사 년을 지낸 덕분에 그전까지는 잘 먹지 않았단 채소들을 일본에서 지내는 동안 즐길 줄 알게 되었는데 죽순도 그렇게 먹기 시작한 채소 중 하나였다. 그 영향 때문인지 나는 여전히 죽순은 회보다 된장국에 넣어 먹거나, 밥에 섞어 먹거나, 간장 조림으로 만들어 먹는 게 익숙하다. 이번에도 죽순을 받자마자 표고버섯과 무, 다시마를 함께 넣어 밥을 지어 먹고, 또 남은 죽순은 유부와 무, 실 곤약을 넣고 간장 조림을 만들어 먹었다.
죽순의 매력은 식감이라고 생각해 매번 양념을 더 해서 조리하거나 다른 재료들과 함께 조리하곤 했는데 갓 딴 죽순을 은박지에 싸서 구워 먹으면 정말 고소하고 맛있다고 한다. 아직 그렇게 먹어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삶은 죽순이라도 직화구이를 해서 먹어봐야지 생각 중이다. 어제와 오늘은 만들어놓은 죽순조림에 밥을 비벼 먹었다. 유부의 달짝지근한 맛과 죽순의 식감이 아침에 먹기에 정말 좋았다. 아마 내일 아침에도 똑같은 밥을 먹을 것이다. 내일은 따로 담아놓은 실 곤약을 더해 같이 먹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