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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네제인장 Apr 17. 2023

일 년에 한 번 오이가 좋아지는 시기




추위가 가시고 햇볕이 본격적으로 따뜻해지기 시작할 무렵, 아직은 겨울 외투와 봄 외투 사이를 오가게 되는 무렵이 되면 토마토, 짭짤하고 달콤한 대저토마토가 나오기 시작한다. 여름 토마토에 비해 가격은 비싸지만, 훨씬 달고, 감칠 맛이 나는 대저토마토는 봄이 오면서 나른해지거나 입맛이 없을 때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대저토마토를 먹으며 지내는 동안 점점 더 따뜻해지는 날씨에 겨울 외투는 아예 모습을 감추고 사람들의 옷은 긴 소매 옷과 반소매 옷을 오가게 될 때쯤이 되면 강한 맛으로 입맛을 자극하던 대저토마토의 입지는 줄어들고 넘치는 수분감과 시원함으로 무장한 오이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의 오이는 오이 특유의 향은 줄어들고 부드럽고 아삭한 식감과 입안을 가득 채울 만큼 많은 수분감을 품고 있기 때문에 더워지는 날씨에 먹기 딱 좋다. 평소에는 오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시기만큼은 오이를 즐겨 먹는다. 보통 식감이 질기거나 향이 강한 오이는 익혀서 나물로 무쳐 먹는데 이 시기의 오이는 익혀 먹기에는 아까울 만큼 식감이 부드럽다. 

오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이 시기의 오이만큼은 꼭 맛을 보이고 싶은 건 나 또한 오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이 비누나 오이 향수에 의문을 가질 만큼 오이 향을 좋아하지 않고 비빔면이나 자장면 위에 고명으로 올린 오이도 가능한 한 피하고 싶어 하다가도 이 시기만 되면 냉장고에 항상 오이를 구비해두고 매일같이 먹게 된다. 채를 썰어서 먹으면 오이 특유의 식감과 맛이 떨어져서 대부분은 껍질을 대충 제거하고 큼직하게 깍둑썰기를 하거나 반달 모양으로 길게 썰어서 입맛 가득 식감과 수분감을 느끼면서 먹는데 이때만큼은 나도 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된다. 

내가 오이를 즐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때때로 수박만큼이나 수분감이 넘치는 오이를 발견하게 될 땐 과일 먹듯 껍질만 벗겨 간식처럼 먹기도 하고(이 글을 쓰면서도 오이 하나를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그렇지 않을 때는 반찬으로 밥과 함께 먹는다. 시중에 파는 쌈장에 올리고당과 견과류, 참기름, 깨소금을 넣어 단맛과 식감을 더해 오이를 찍어 먹기도 하고 마트에 파는 국수장국을 깍둑깍둑 썰기 한 오이 위에 뿌리고 깨소금을 솔솔 뿌려 샐러드처럼 먹기도 한다. 어쩌다 향이 강하고 거친 오이가 섞여 있을 때는 양파와 함께 편 썰기를 해서 고춧가루, 식초, 매실청, 소금에 버무려 새콤달콤한 오이무침을 해 먹는다. 

그렇게 오이를 한참 즐기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일 년 치 먹을 오이를 이 시기에 몰아서 다 먹게 된다. 올해에는 아직 일 년 치를 채우기는 못해서 한동안 더 먹을 생각이다. 오늘은 어째서인지 채를 썬 오이가 가득 올라간 냉국수가 먹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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