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함을 위한 하루의 노력

2019년 1월24일

by 김은혜

입을 잘못 놀렸다. 회의에 관한 글을 쓰고 나니 회의가 나 불렀냐며 밀어 닥쳐서 정말 일주일 내내 회의만 했다. 출근하면 회의하고 회의하고 또 회의하고 화장실 갔다가 회의하고 점심도 못 먹고 회의하고 집에 갈 때까지 회의하고 퇴근시간 넘겨서 회의하고 겨우 집에 가고 다음날 출근해서 또 회의하고...의 반복. 이 정도로 회의만 계속 하다보면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도 배도 안 고프고 밥 맛도 없고 오히려 뭘 먹으면 체할 것 같아서 그냥 거르기가 일쑤, 강제 간헐적 단식을 한 일주일이었다.


회사에서 너무 진을 다 빼다 보니 일상이 무너지는 건 당연했다. 퇴근 후 저녁에도 뭘 즐긴다기 보단 얼른 밖에서 밥이나 후딱 먹고 들어가서 좀 쉬고 잠이라도 더 자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글을 쓰는 건 생각도 못했고 그 좋아하던 책도 한 글자도 못 읽었다. 머리에 더 쓸 용량이 남아있지 않은 느낌이었으니까. 아무튼, 겨우 일주일 정도를 이렇게 살았는데 인생이 너무 피폐해져 버렸다. 몸도 마음에도 여유가 없으니 뾰족해 지기가 일쑤였고 평소엔 아무렇지 않을 말과 행동들에 너무 예민하게 상처를 받았다. 스스로 마음을 다스려야 했는데 그러기엔 내공이 턱 없이 부족했다. 어느 때나 차분하고 초연하고 좀 우아하고 싶었는데, 초조하고 불안해 하고 다소 신경질적에 짜증만 는 내가 있을 뿐이었다. 어휴, 예상은 했어도 어찌나 실망을 했는지.


감정 기복이 좀 있는 편이라 늘 일정한 템포를 유지하는 차분한 사람이, 혹은 그렇게 보이기라도 하는 사람이 나는 늘 되고 싶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일희일비가 다 무어냐, 하나의 일에 웃고 울고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무 일이 없어도 울고 싶었다가 갑자기 날아갈 것 같다가 하는, 날 때부터 좀 그런 성향을 타고난 편이다. 사람은 잘 변하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이효리의 말마따나 가능한 것만 꿈꾸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항상 우아함을 꿈꾼다. 내가 아직은 가지지 못한 것, 그 꿈을 위해 내가 하루의 10분씩이라도 하는 일이 있는데 그건 바로 책을 읽는 것이다.


뭐라도 읽자. 하루에 10분이라도 읽자. 출퇴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이고 이런저런 것들에 늘 치이는 삶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내 자아와 존엄성을 지켜내고 하루에 10분 만이라도 좀 우아해 지고 싶어서 그 틈바구니에서 잠깐이라도 뭔가를 읽을 수 있을만한 짬을 찾아낸다. 나의 경우엔, 이건 거의 살아남으려고 하는 치열한 노력이다. 그 시간이라도 없으면 내가 너무 '무' 혹은 '0'의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지난 열흘 가까이 책을 한 자도 못 읽다가 보통의 업무 스케줄로 돌아온 오늘에서야 다시 책을 읽었다. 오늘은 출근하는 지하철에서도 읽고 점심시간에도 혼자 카페에 가서 책을 읽었다. 그제서야 다시 균형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사실, 책 몇장 더 읽는다고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거나 똑똑해졌다거나 그렇지는 않을 거다. 그렇지만 읽고 있는 그 순간, 그 찰나 만큼은 내가 차분할 수 있다. 방방 뛰면서 시끄럽게 떠들면서 책을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책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차분하고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우아한 모습인 것이다. 지난 열흘 간은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의 모습이다가, 비로소 오늘 잠깐이나마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가질 수 있게 되어서 다시 조금 충만해졌다. 심지어 오늘은 드디어 글쓰기까지 재개했으니 이보다 더 좋은 나는 당분간 없을 것 같다.


아마 또 다시 살인적인 회의 스케줄이 돌아오면 나는 쉬이 균형을 읽고 '별로인 나'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지만 다행인 것은, 며칠 동안 되게 별로이다가, 하루 이틀 밥을 먹고 잠을 잘 자고 나서 한 십분 정도 책을 읽으면 조금씩 다시 균형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망가진 내가 회복을 할 수 있는 비교적 쉬운 방법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 문득 감사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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