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온도

2019년 2월 12일

by 김은혜

요즘 내 동생과 내가 푹 빠져있는 취미는 '유투브 보기'다. 유투브는 정말이지 신세계다. 먹방은 이제 좀 식상해질 정도로 많이 봤고 얼마전에는 트랜스젠더가 성 전환 수술한 내용을 공유하는 것까지 봤다. 개 중에는 정신건강에 해가 될 것 같은 내용도 있어서 조심해야 할 필요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내 인생에서 알고 지낼 일이 극히 드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고 가끔은 공감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사실 그게 책 읽는 것과 뭐가 그렇게 다를까 싶다. 소설을 읽는 이유는 내가 모르는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고 공감함으로서 내 사유의 폭을 넓히고 더 나아가 내 자신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거니까. 적어도 나는 그런 이유로 책을 읽고 그렇게 따지면 유투브를 보는 것도 어느 정도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그 중에서도 내가 요즘 특히 빠져있는 유투버는 '온도'님이다. 나보다 서너살 어려 보이는 이 유투버는 특별한 일 없는 자신의 일상을 공유한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끼니를 챙기고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해서 장을 보고 저녁을 만들어 먹고 친구를 만나고 이런 저런 생활을 하고 다시 잠자리에 드는 삶. 명품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카메라에 본인 얼굴이 거의 비치지 않기 때문에 빼어난 외모에 빠져드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나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어찌보면 다소 지루한) 일상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한데도 보고 있으면 그렇게 빠져 든다.


사실 이 분의 동영상을 보고 있자면 나는 옛날 생각도 많이 난다. 자취를 오래 하고 있기 때문에 보이는 공통점도 많고 특히나 나는 신촌 및 홍대 일대에서 자취를 하며 대학원 시절을 오래 보냈기 때문에 그 비슷한 장소라도 보이는 날에는 더 반가운 마음이 들고 그렇다. 나도 딱 저 나이 때에 저 비슷한 언저리에서 자취를 했었다. 그럼 그 때의 나의 일상도 저렇게 이쁘고 평화로웠나? 나는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당시의 나는 내 일상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은 괴로운 쪽에 가까웠다. 똑같이 아침에 일어나 학교를 갔고 친구들을 만나고 장을 봐서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사 먹거나 했었지만 그게 평화롭다거나 행복하지는 않았다. 혼자 먹는 밥은 그저 끼니를 떼운다는 느낌으로 먹기 일쑤였다. 간혹 집에서 밥이라도 해 먹을라 치면 내가 지금 나 혼자 한 끼 먹자고 이 많은 수고를 하는 건가 싶어서 처량하기 그지 없었고 오롯이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는 주말이면 외로움과 심심함에 몸부림 치기 일쑤였다. 지금 현재 지구상에서 나만큼 외로운 사람을 없을 거라고, 있을리가 없다고 자주 장담하곤 했다. 자주 우울감과 무기력함에 빠져 취미생활 같은 것은 할 생각도 못해봤다. 그저, 내 인생에서 소스라치게 외롭기만 한 이 시간이 빨리 흘러가 주기를 기도했던 것 같다.


뭐 좀 안타깝긴 하다. 스스로가 좀 안쓰럽기도 하고 나름 소중한 시간이었는데 왜 그렇게 밖에 못 보냈나 싶기도 하다. 원래대로의 나라면 스스로를 매우 가엾게 여겨 나의 팔자와 운명과 미래에 대해 무척 비관하고 슬퍼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엔 내가 좀 생각을 바꾸기로 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노력하여 이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물론, 내가 혼자서도 일상을 씩씩하고 예쁘게 꾸려 나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나처럼 외로움을 많이 타고 예민하고 감정이 많은 유형의 인간들은 혼자 있어야 하는 길어지면 필연적으로 취약해 질 수 밖에 없다.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태어나 버린 걸. 노력도 한계가 있고 타고난 부분은 바꾸기 힘들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대신에 나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시간은 잘 꾸릴 수 있는 힘이 있다. 내 자취방에 친구들이라도 초대하는 날이면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접을 하려고 한다. 먹는 것도 조금이라도 더 좋은 재료로 맛있고 이쁘게! 배부르고 미련없이 먹고 나갈 수 있게, 만약 자고 간다면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편한 잠자리로, 하나 밖에 없는 내 침대도 양보한다. 아침에 일어났다면 해장 정도는 해서 집에 보내자! 밖에서 밥을 먹을 때도 왠만하면 맛있어 보이고 조금 더 좋은 부분은 양보하자. 내가 먹고 싶은거 저 사람도 먹고 싶을 테니까. (물론 싫은 사람과 억지로 먹는 식사자리에서까지 그러진 않지만) 뭐 그러면 된 거 아닌가. 어차피 누구나 완벽할 수는 없는 거고 이 정도면 훌륭하다. 스스로 일상을 잘 살아낼 수 있는 사람이면 혼자서도 충분히 잘 살겠지만 나처럼 그게 어려운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 일상을 보내면 될 일이다. 자신에게 맞는 삶을 선택하면 된다.


나는 하지 못했던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누군가를 보면서 부러운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한 며칠, 나는 왜 그때 그렇게 못했을까, 다시 돌아 간다면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문득 내가 또 누군가의 삶을 따라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닫고 관성이란 역시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좀 그렇다. 내가 가진 좋은 것들은 못 보고 내 단점은 크게 보이고 남의 장점은 더 크게 보인다. 뭐 이 성격도 나쁜점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굳이 고칠 생각은 없다. 어쩌겠나. 그저 나에게도 좋은 점이 많다고 나도 잘 살고 있다고 의식적으로 마음의 온도를 내 스스로를 향해 조금 맞추어주고 싶은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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