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6일
책을 읽으며 연필로 줄을 치는 것을 좋아한다. 주로 줄이 쳐지는 문장은 '와, 어떻게 이런 글을 쓰지?'라고 감탄할 때, 그리고 '그래, 맞아맞아. 나도 이렇게 생각했어!'라며 작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에 매우 기쁠 때 나는 연필을 들고 줄을 긋는다. 그리고 그렇게 줄이 쳐진 문장을 곱씹어 읽어보며 나는 내가 존재함을 확인한다.
브런치 같은 오픈된 공간에 글을 쓰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일기장에 적어놓고 혼자 봐도 되지만 인터넷상에 글을 올리고 사람들이 내 글을 읽을 때 마다 올라가는 조회수를 보면서 나는 내가 존재함을 확인한다. 내가 존재해서 글을 썼고, 그 글이 읽히는 것을 조회수로 확인하면서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인스타그램도 하고 그 전엔 카카오스토리를 했고 더 전에는 싸이월드도 했었다. 나는 관종이다. 기억할 수 있는 한 어릴 때 부터 나는 관종이었다.
우리 모두는 관종이다. 우리의 관종력은 인류의 DNA에 새겨져 있는 것이라고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인간은 태어나 스스로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생아는 울어서 나의 존재와 배고픔과 불편함을 알려야 한다. 울어서 엄마의 주의를 끌고 귀여워서 엄마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관종력이라는 건 생존과 직결된 문제인거다. 이 관심을 받아야 하는 욕구, 나의 존재를 확인받고자 하는 욕구가 없었다면 인류는 살아 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남편이 고맙다 사랑한다 말해줄 때, 엄마가 우리딸이 최고라고 말해줄 때, 그 외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눈빛과 말들에도 역시 나의 존재를 확인받고 기쁨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이 내 존재 확인의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도록 주의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변덕스럽기 마련이고, 또 내가 관심을 달라고 징징댈 때마다 남편과 엄마와 내 주위 사람들이 늘 거기에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것이 불특정 다수인 대중일 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내가 관심이 필요할 때 그 대중이 거기에 있어줄 것인지, 그리고 내가 듣고 싶은 말만 해 줄 것인지는 너무나도 불확실하다.
대중의 관심을 먹고사는 연예인들의 마음이 쉬이 병들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나는 여기서 찾는다. 우리는 그들을 관종이라고 부르며 비하하지만, 사실 그건 우리 모두가 그렇다. 다만 연예인의 직업 특성상 그들은 대중에게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아야 할 일이 너무나도, 너무나도 많다. 불행한 건, 너무 어릴 때 데뷔를 했거나 연예인으로서의 성공에만 몰두한 나머지 대중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때 도대체 나의 존재를 어디서 어떻게 확인 받아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사소한 습관이 필요하다. 나는 책에 줄을 치고 글을 쓰지만, 누군가에게는 반려동물과 눈을 맞추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아이를 키우고 음식을 만들거나, 사진을 찍고 음악을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세상 사람의 수 만큼 많은 사소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 사소한 행위를 조금씩 늘려나가야 한다.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도 나의 존재와 가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사소한 취미가 필요하다. 돈을 많이 벌고 이름을 알리고 성공을 하고 나서도 죽지 않고 행복할 수 있으려면, 내가 뭘 할때 스스로를 가치있다 여기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삼발이 같은 걸로 치면 다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안정적이다. 혼자서도 나를 지탱할 수 있어야 타인의 말에 많이 흔들리지 않고 죽지 않을 수 있다.
악플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인다고 해서 악플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많은 형벌을 내려도 우리 사회에 강도 살인이 없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범죄 수준의 악플은 강력히 처벌해야 마땅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세상 모든 사람이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말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부지런히 나의 보호막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누군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는 그렇게 잦아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편안히 잠들기를,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