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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May 26. 2020

여행, 자신과 만나는 시간

인생 여행 이야기



여행, 자신과 만나는 시간


여행을 생각하면 뭉클해진다. 누군가에게는 여행이 그저 설렘, 친구들과의 여가, 새롭고 즐거운 경험일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 온전한 여행이란 혼자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이다. 진정의 나를 발견하는 시간인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여행을 혼자 한다. 여러 곳을 여행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순간들은 보통 이어진다. 혼자 하는 여행이라서일까. 어떤 날 어떤 장소에서의 기억이 문득 떠오르기는 하지만 시기의 구분은 딱히 없다.


첫 여행은 언제였더라. 제주도로 혼자 떠난 날이었다. 며칠을 혼자 있으면서 고요해지고 행복해지는 나를 보면서 알았다. 아, 나는 고독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구나. 새롭게 마주치는 사람들, 새로운 풍경들, 그리고 온전히 스스로 디자인하는 하루의 시간들까지. 모두 너무나 편안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혼자 유럽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나 한 달 넘게 혼자 여행한 유럽에서의 경험은 꼭 영화의 장면처럼 하나하나 마음 속에 남아있다. 쓸쓸하고도 평화로운 시간들이었다.


사랑했던 세비야에서
수도원의 저녁




그곳의 일부분이 되어 길게 머무는 것


나는 여행을 할 때에 한 도시, 한 숙소에 오래 머무는 편이다. 꼭 가야 할 핫스폿이나 유명한 호텔은 관심이 없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사람들과 함께 있는 호스텔이 낫다. 보통은 가장 가정집 같은 에어비앤비를 빌려 며칠 동안 생활한다. 그곳에서 지내며 꼭 그곳 주민과 같이 살아보는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파리의 아파트다. 도심과 조금 떨어진 아름다운 마을에 자리잡은 작은 아파트. 매번 황홀한 다홍빛 저녁 노을을 보며 집에 가곤 했다. 집 앞의 작은 로컬빵집에서 빵을 사고, 과일집에서 과일을 사고. 마주치는 사람들과 밝게 웃으며 인사하고, 때로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 보면 1주일 안에 단골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아파트로 향하는 영화같은 파리의 길목
요리해먹은 것


익숙해진 곳에서 매번 비슷한 아침을 보낸 다음에는 보통 숲이나 공원, 미술관과 같은 곳을 하나 정했다. 그리고 근방에서 익숙지 않은 거리를 마냥 걸어 다니다가 무언가를 읽고 쓰기 좋은 마땅한 장소를 발견한다. 그저 기본이 충실한 카페라던지 바라던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아도 따뜻하고 편안한 곳. 규모는 작더라도 신념이 있는 곳. 그리고 자연과 닮아있는 곳. 그런 곳들은 들어가자마자 느낌이 오는 것이다. 아, 여기다! 하고. 비싼 관광 명소나 레스토랑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나는 정성이 어린 곳을 좋아했다. 이렇게 한 곳에 길게 머무는 여행은 나만의 방식과 취향대로 삶을 느끼고 사는 방법을 알게 해 주었다.



관광객이 다니지 않는 아름다운 언덕
우연히 마주친 자연 속의 카페


여행 중 찾은 나다움


여행 중에는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것이 참 많았다. 장소, 사람, 예술적인 건축물과 이야기들과 같은. 이를 사진으로, 또 글과 그림으로 남기고 싶어 손가락이 늘 근질거렸다.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나에게서 곧잘 발견했다. 하루에 있었던 일화들을 온통 적어놓고 싶기도 했다. 만났던 사람들과 그에 느꼈던 다양한 감정들. 억지로 웃지도 않고 억지로 눈물을 참지도 않았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과 공간 속에 나를 맡기고 지냈다. 쏟아지는 고독함도 오롯이 느껴보고 가슴 터질 듯한 감동도 느꼈다. 혼자 하는 여행만이 줄 수 있는 감정들이다. 이 감정들이 여행의 한 순간을 의미함을 알기에 이를 마음껏 풀어놓고 싶은 것이다. 그 무엇으로든.


그저 즐거우려고만 하는 여행이라면 이토록 만족스럽지는 못하리라. 물론, 아름다운 풍경을 혼자 마주치고 감동해 울어버릴 때도 있고 유쾌한 사람들과 만나 깔깔대며 웃을 때도 있다. 때로는 험한 경험을 하고 때로는 몰아치는 외로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기도 했다. 내게 여행의 감정은 그저 즐거움이 아니다. 지나가다 거울이나 유리에 비친 내 표정을 보면 원래 사람들과 함께 있는 모습처럼 마냥 웃고 있지만은 않았다. 묘사하자면 그저 평온한 상태다. 어쩌면 가장 나다운 모습이 아니었을까.


리스본의 공원
베네치아의 수중버스 위에서


여행 후에 남은 것들


두서없이 여행에 관한 나의 느낌들을 풀어냈다. 두서없는 게 내 여행의 정체성이 아닐까 싶다. 정보도 없고, 뭐 지식도 없다. 여행으로 배워온 게 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없다. 어디가 좋다고 알려줄 것도 없다. 모든 것이 그저 내 취향으로 우연히 마주친 것들이었기 때문에. 그러면 여행은 무엇을 나에게 남겼나. 사라진 통장 잔고? 아니면 흘러간 시간들?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남았다. 나는 여행한 감정이 차곡차곡 쌓여감을 느낀다. 그것들은 오롯이 마음속에 자리 잡아 때때로 감동을 선물해준다.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은 자유로움과 하루를 나다운 것들로 가득 채우려 했던 매일의 계획들. 낯섦 속의 익숙함과, 따스한 사람과의 접촉과 온기들. 이에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가치가 있었기에.


해변가를 걷다가


그 여행지만의 분위기를 느끼고, 그에 흠뻑 젖어드는 것. 꼭 그 여행지의 일부분과 같이. 그것이 나에게는 여행이다. 그리고 여행은 나의 삶과 닮아 있다. 오롯이 나 자신의 모습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모든 감각을 곤두세워 세상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 앞으로도 여행할 많은 날들이 있을 테다. 여행지에서의 시간들은 꼭 이어져있듯이 기억회로에 담기겠지. 그러면 필름을 돌리듯 나는 그 기억들을 꺼내어, 나와의 시간을 회상하며 그 속에 빠져들 것만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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