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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 Jun 11. 2020

스페인 고산마을 자연 속 일기

산들 씨 가족 이야기



산들 씨의 이야기는 몇 년 전 TV 프로그램에서 접했다. 스페인 고산 시골 마을에 스페인 남편과 세 아이들과 살고 있는 산들 씨. 이후 그녀가 쓴 책 '우리 가족, 숲에서 살기로 했습니다'를 통해 그녀의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한국의 생활이 무의미하게 느껴져 혼자 떠난 4년간의 해외여행과, 그곳에서 만난 스페인 남편, 결혼을 결심하고 시골에 돌집을 짓고 아이들과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들이 에피소드와 함께 자세히 나타나 있었다.


여행 중에 만난 산들 씨와 산똘 씨(남편)


자연 속에 집을 짓다


그들은 결혼 후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스페인 시골마을에 허물어져가는 돌집을 단돈 600만 원 정도에 산다. 이를 7년간이나 손수 고쳐 살 수 있도록 만든다. 도시에서 이 시골까지 주말마다 오가면서, 하나하나 재료를 사고 방법을 배우면서.


집을 지을 때도 돕는 문화, 그리고 일한 뒤 자연 속에서 쉬는 이웃들.


집을 지을 때 큰 도움을 준 사람들은 바로 주변 이웃들과 산똘 씨의 친구들이었다. 이 곳에는 예전 한국 시골과 같이 이웃 간의 따스한 마음과 품앗이의 관습이 존재하고 있었다. 서로 필요한 일이 있으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돕는다. 휴식 시간에는 유쾌한 오락을, 일을 끝내고는 뒤풀이를 함께 즐긴다.


가난했을지 몰라도 산들 씨 부부는 집을 손수 지으며 기술력이나 완성된 집뿐 아니라 내적으로도 많은 것을 얻었을 테다. 과정의 뿌듯함, 이웃 간의 따스함,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그들은 집의 완성과 함께 태어난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낯선 환경이었으나 사람들을 쉬이 차별하지 않고 바라보는 따뜻한 스페인 문화, 바람직한 가치관을 가진 믿음직한 남편과 함께 그녀는 이곳 스페인 고산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그려나간다.


7년에 걸쳐 완성된 직접 만든 멋진 돌집


스페인 남편, 산똘 씨에게 배운 것


그녀의 남편인 산똘 씨(산들 씨가 붙여준 한국식 이름)에게도 큰 영감을 받았다. 그는 스페인의 디자이너였고 실력이 참 좋았다고. 그러나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고,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은 그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5년쯤 일한 뒤에 회의감이 들어 사표를 던지고 자전거 여행을 시작했다.


그는 여행 중에 산들 씨를 만난다. 비혼 주의자였던 그는 산들 씨가 한국에 돌아가야 하자 결혼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태어날 아이를 위해 시골에 가기로 결심한다. 스페인 시골에서 집을 수리하거나 수도나 태양광을 설치하고 수제 맥주를 제조하는 등 모든 것을 산들 씨와 함께 주체적으로 해낸다. 이후에는 산림학을 다시 공부해 지금은 산을 지키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고.


자신이 원하는 일이 있으면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이 실천으로 옮기고 보는 것. 생각은 신중하게 하되, 한번 결심한 일은 망설임 없이 돌진한다는 그의 모습에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할 일을 먼저 생각하자.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새 답답했던 문제가 술술 풀릴 수도 있거든.


이러한 실천력뿐 아니라 산똘 씨가 또 큰 울림을 준 것이 있다. 바로 아내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산똘의 눈과 마음은 늘 '가족'과 '오늘'에 맞춰져 있다. 그는 모든 결정을 부인인 산들 씨와 함께 해야 의미 있다고 생각하여 모든 결정을 부인과 함께한다. 또한 평소 아이를 대할 때 그의 시선은 언제나 아이 중심이다. 아이들의 요구와 행복을 최우선에 둔다.


인간극장에서 보았던 장면 하나가 생각난다. 벌을 키우던 산똘 씨는 벌이 있는 곳은 위험하니 들어가지 말라고 딸들에게 신신당부한다. 그러나 활발한 딸 하나가 그곳에 들어가 벌에게 쏘인다. 이 때, 산똘 씨는 말을 듣지 않은 딸을 나무라기는커녕, 딸의 안위를 살핀 뒤 벌집을 그날 밤 당장 저 멀리 다른 언덕으로 옮겨버린다. 아마 그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명확했던 듯하다. 벌집보다 딸의 행복과 안녕이 확고하게 먼저인 것이다.



스페인 시골의 자급자족 라이프


한국의 편리함이 익숙했던 산들 씨 또한 점점 스페인의 시골 문화에 익숙해진다. 아무것도 없었던 집에 빗물을 식수로 사용할 수 있도록 수도 장치를 만든다. 전기가 없으면 태양광 전지를 설치한다. 화장실은 부식토 화장실이다. 자급자족적 삶이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또한 텃밭이 있어야 음식을 얻을 것이었다. 그러나 땅은 황무지. '없음' 속에서 그들은 '있음'을 함께 만들었다. 자갈을 고르고 땅을 갈아엎어 버려졌던 불모지를 비옥한 땅으로 바꿔놓았다. 거기에 작물을 심는다. 농사가 한결같이 잘 되지는 않지만 자연에서 오는 음식의 소중함과 농사의 가치를 깨닫는다.


시골 생활은 낭만이나 전원, 휴식만 있는 게 아니었다고. 가장 필요한 것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인내'였다. 오늘 이뤘다 해도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을 감내하며 현실을 즐길 때 비로소 시골 생활이 가능해진다고 했다. 분명 부딪힐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하나하나 해결해야 할 것들과 느리고 불편한 것들이 매번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작은 것에 감사하는 방법이나 모호한 삶의 파도를 타며 지내는 법을 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


그들이 처음 시골에서 살게 된 것은 오직 태어날 아이들에게 자연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지금 세 아이들은 자연을 그대로 느끼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들은 작은 것에 행복해하고, 신기해하며, 느리고 자연스럽게 삶의 과정을 즐기며 살아간다.


산들 씨는 지금도 자연을 아끼고 자급자족하며 가족들과 사는 단란한 일상을 글과 영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아날로그적 삶을 직접 살며, 또 이를 콘텐츠로 만들어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그녀가 고맙다.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이나 가정을 이루는 것에 모호한 두려움을 가졌던 나에게 크나큰 영감과 용기를 준 것만은 확실하다.




멀리 있는 그녀가 절대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낯선 땅에서 하나의 언어를 배우고, 시골에서 황무지에 밭을 일구고 허물어져가는 돌집을 7년간 손수 짓고, 세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까지 모두 처음이었을 테지만 강인하게 이루어내고, 지금도 일상에 충실하게 지내고 있는 산들 씨.


모든 그녀의 일들은 계획되었기보다는 삶의 순간순간에 충실하며 하나씩 해결하다 보니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녀의 선택과 결정, 그리고 이어나가는 삶의 방식에서 큰 위안과 용기를 얻었다. 타인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마음에 충실하면서 감사하고 만족하며 지내는 모습에서. 앞으로도 작지만 따뜻한 공동체 속에서 자연과 함께 나이 들어갈 산들 씨 가족의 모습이 내 마음 속에도 아름답게 그려진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라이프스타일, 원하는 방향으로의 실천력, 그리고 불편한 것을 느리지만 묵묵히 해결해내는 주체성. 작은 것에 만족하고 가족, 이웃과 온기를 나누는 것까지 모든 것이 나에게도 따스하게 다가온다. 자연스러운 삶을 느리게 이루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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