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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 Jul 07. 2020

고무줄 바지와 같이 편하게

하우스메이트 J 이야기


이 곳 제주에서는 흉내내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이 마음을 잔뜩 동하게 해요. 느린 곳이어서일까요? 라이프스타일을 배울 사람들이 참 많아요. 제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단순한 삶을 살고 있어요. 오늘은 인생을 즐기는 하우스 메이트 J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지금 나는 제주의 J의 집에 살아요. 그녀가 운영하는 셰어하우스에 사는 거예요. 사실 J는 바로 옆 별채에 따로 살고 있어서 사실상 같은 공간에 있지는 않지만 그녀는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늘 하루도 빠짐없이 밝은 얼굴로 집 안을 들여다보고 인사해요. 혹시나 불편한 건 없는지 세심하게 살피지요.


J와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솔직하고 유쾌한 입담에 까르르 넘어집니다. 그녀와 대화하고 있자면 별 것 아닌 일들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굳이 왜 인생이 진지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요.


그녀는 자연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예요. 그녀는 자연에게 해가 되는 것을 싫어해요. 그리고 누구에게 기대는 것도 잘 하지 않는 독립성을 가지고 있어요. 손수 모든 것을 해결하고 소비하기보다는 생산하는 즐거움을 맛봐요. 게으를 때에는 최선을 다해 게으르게 지내고, 해야 할 일은 확실히 제대로 해내요. 쉬는 날에는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고 일주일에 두 번은 커피를 만들어요.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새로운 메이트들을 만나요. 집을 보수하고 세심하게 살피는 것 또한 자주 합니다.


그녀는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하루를 보내면서도 자연과 어우러지며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그녀는 집을 정성스레 가꾸고 주변의 것들을 아끼고 사랑해요. 심지어는 뒷마당에 아기 고양이들이나 집에 찾아오는 제비 가족에게도 관심이 많아요. 동물들을 보면 그들의 눈높이로 한참을 놀아주고요.



J도 회사생활을 했었다고 했어요.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가장 부정적인 말은 아마 그 시절 이야기일 거예요. 아마 자신과 가장 잘 맞는 라이프스타일을 이 곳에서 찾게 되었나 봅니다. 꼭 이 곳의 일부인 듯 그녀는 이 곳과 자연스럽게 어울려요. 이제 이 곳 마을에 온 지 3년이 되어간대요. 마을의 모든 집과 그곳 사람들을 알아요. 거의 귀농한 사람들이거나 할머니들인데 할머니의 뒷모습만 보고도 무슨 밭, 무슨 집할머니인지 알만큼 이 곳 인사이더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주민이 아니라 아주 길게 머무는 '장기' 여행자라고 말해요. 무려 3년 동안이나 제주동쪽을 여행하고 있는 사람이래요. 그녀를 보고 있자면 여행은 곧 삶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니 반대로 삶은 여행인지도 모르겠어요. 굳이 여행을 하지 않아도, 지금의 순간이 일상이 된다고 하더라도 숨어있는 즐거운 것들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요.



그녀 옆에서 연신 행복하다는 말을 해대면서도, 문득 생산적인 것이 없나 인터넷을 들여다보는 나를 발견해요. 그런 내게 J는 '이런 지독한 한국인!' 이라며 웃습니다. 그제야 힘을 푹 빼고 그녀의 유쾌하고도 편안한 마음가짐을 나에게도 들여와요.


내 삶에 예의를 갖춘다는 것은 딱딱한 정장을 입고 불편해하기보다는 고무줄바지를 입은 것처럼 입은 듯 안입은 듯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귀여운 연보라 고무줄바지를 입은 그녀를 보니 자연스레 떠오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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