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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 Jan 31. 2021

삶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삶으로 존재하기

영화 <소울>

무언가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히게 될 때, 쓸데없는 걱정과 좌절감이 들 때가 있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도 미리 걱정하고 불안해하거나, 막막함에 우울해지기도 한다. 삶에 대해 지나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삶이란 무엇인지. 때로 한 가지에 지나치게 몰입하고 걱정하느라, 사소한 결점 하나에 집착하느라 주위의 것들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영화 <소울>에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집착'을 무시무시하게 그려놓았다. 죽은 영혼이나 태어나기 전 영혼들은 귀엽게 그저 그려지는 반면, 집착하는 사람들은 거의 괴물과 같이 그려진다. 이들은 어떤 것 하나에 집착하느라 주위를 보지 못하고 땅바닥만 보며 중얼거리며 걷고 있다. 현실이 아닌 자신이 만든 생각 속에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생각에 사로잡혀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은 집착을 계속해서 불러일으키고 부정적인 감정을 키울 뿐이라는 것.


<소울>은 이렇게 지나치게 생각하기보다는 삶으로 존재하는 것, 그저 '주어진 삶을 사는 것'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다. 어떤 목적이 있어야만 삶을 살아야한다고 생각했던 조. 대단한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삶에 의미가 생긴다고 생각했던 그가 영화의 후반부에 소소한 삶의 모습들, 인상 깊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로 표현하는 것은 마음을 찡하게 울린다. 크게 성취했던 일보다는 나뭇잎 하나가 햇빛에 반짝일 때 느꼈던 그 작은 순간을 음악으로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 감동을 애써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 뭉클했던 소소한 순간들을 오롯이 표현하는 게 진정한 예술이 아닐까.


정규직을 버리고 예술을 선택하려는 '조'를 탐탁지 않아했던 조의 엄마가 사랑으로 그를 이해하는 모습 또한 마음에 가득 들어왔다. 이해를 하고 말고의 여부나 선택의 옳고 그름에 관한 문제가 아니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가슴으로 하는 이해, 다르지만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영혼을 울리는 것이었다.


있는 그대로 지금 여기에서 경이로운 것들을 찾아내는 것, 소울은 이에 대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잘못된 삶은 없다고, 어떤 목적이나 의미를 찾지 않아도 된다고. 하나하나에 집착하며 무엇을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그저 하루하루를 충분히 느끼며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게 삶이 아니냐고 말이다. 이는 어른이 되어버린 순수했던 마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아닐까. 마음이 온통 촉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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