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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 Oct 09. 2019

적당히 미니멀라이프, 집




꼬박 3년을 살던 대학교 앞 하숙집 생활을 청산하고 졸업 후 몇 개월간은 본가에서 짐을 풀어놓고 자유로운 몸이 되어 다녔다. 이미 미니멀 라이프를 알게 된 지 1년이 넘었던 터라 나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이 28인치 캐리어에 모두 들어가는 상황이었다. 이 캐리어를 가지고 여행도 다니고 셰어하우스에도 살면서 떠돌이 생활을 했다. 물론 이 생활은 매우 가볍고 자유로웠으나 나만의 공간이 없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나를 불편하게 했다.



몇 개월 후, 드디어 나만의 집을 얻게 되었다.

8평. 나만의 첫 공간으로 얻게 된 오피스텔의 평수였다. 내가 가장 편안하고, 편리하게 살 수 있는 정도의 크기였다. 적당한 중저층에 해가 잘 들어오는 남서향. 그리고 하늘이 잘 보이는 큰 창을 가졌다. 겨울엔 좀 춥겠지만 통유리 밖을 바라보는 것은 내 마음을 채워주므로 포기할 수 없었던 것. 이 오피스텔은 올해로 지어진 지 10년이 넘은 방이었고 전에 살던 분은 가구를 참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강아지와 고양이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방의 아늑한 느낌이 좋았다.



이사하면서는 여러 사람들이 살면서 노래지고 얼룩이 진 벽의 도배만 하얗게 새로 했다. 한 쪽 벽면에 작은 붙박이장 하나가 있었고, 오피스텔 기본 옵션으로는 미니 세탁기와 냉장고. 이 곳으로 이사 오기 전에는 작은 하숙방에 살았고, 내가 가진 가구는 하나도 없었기에 무작정 필요한 가구를 사러 갔다. 하루 종일 가구를 보러 다녔지만 고른 것은 침대 하나와 좋아하는 노란 전등 하나였다.


수납이 잘 되는 침대와 4계절 내내 써도 좋은 침구.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며 깨달은 것은, 집은 참 소중한 공간이며 내가 오롯이 나다울 수 있는 충전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집이 에너지를 채워주는 공간이 되려면 집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정도로 내가 관리할 수 있는 물건들만 남기는 게 좋았다. 쌓여가는 물건에 지치지 않도록.  


충분한 수납공간이 있는 좋은 원목 침대 하나. 새것인데도 풍겨오는 나무 냄새가 좋았다. 노란빛 전등은 흔한 디자인이었지만 앤티크 한 느낌이 내 마음에 들어 사게 되었다. 이 두 가지 가구 이외에 내 마음에 드는 다른 가구가 생길 때까지 나는 본가에서 가져온 한두 가지의 물건과 캐리어 속 짐으로 버티기로 했다.



6개월 이상 동안 나는 가구가 거의 없는 상태로 살았다. 이렇게 적은 물건으로도 살아가기에 지장은 없었다. 그러나 왠지 모를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살았던 본가에서 식물을 많이 키웠고, 거실엔 책이 가득 차 있으며 곳곳에 손길이 묻은 따스한 물건들이 있어서였을까. 나는 본가에 살 때 채워진 물건들이 부산스럽거나 정신없게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손 닿는 곳에 늘 쓰던 물건이 있어서 편안함을 느꼈었다. 그에 비해 지금의 나의 방은 분명히 그 무엇보다 단순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도 비어있는 공간이 오히려 외로움을 느끼게 했다.


그렇게 나는 가구들을 천천히 들이기 시작했다. 단, 꼭 필요할 때마다 신중히 골라서 하나씩. 가구를 고르는 기준은 내 몸에 닿았을 때 가장 편안한 것, 또 내 눈에 보기 좋은 것이었다. 예컨대 완벽하게 깔끔하고 각진 가구보다는 예스럽고 둥근 가구. 전부터 좋아했던 둥근 디자인의 짙은 원목 의자와 친구들이 왔을 때도 편안할 수 있는 원형 테이블과 2인용 소파가 그러했다. 전에 들인 가구와 잘 어울리는 지의 여부도 가구를 살 때 중요하게 보았던 부분이었다. 그렇게 천천히 내 손길이 닿은 내 방이 완성되었다.




완성된 이 집은 내 미니멀 라이프를 대변하고 있었다. 모두 비우고 가장 적은 물건으로 살아가는 것보다는, 불필요한 것들을 비우고 정말 마음으로 원하는 것만 남기고 들이는 것이 좋았다.


물론 지금도 없는 게 많은, 조금은 부족한 집이다. 그러나 천천히 필요하다고 생각한 가구를 들였기 때문에 나에게는 전혀 불편하지 않다. 이제는 집에 들어왔을 때 더 이상 허전하지 않고, 그저 내 손길이 가득 묻은 집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고, 필요로 하며, 나다울 수 있는 것들이 집 안에 채워졌다. 이제 집은 나에게 혼자 있어도 그저 좋은, 정말이지 소중한 공간이 되었다.


집은 그저 사는 공간 이상의 것이었다. 늘 돌아올 수 있는 나의 집. 내가 가장 나다울 수 있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 집은 이제 내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집을 소중하게 아껴주는 만큼, 그 공간을 닮은 내가 소중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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