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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 Oct 12. 2019

적당히 미니멀라이프, 여행

미니멀리스트가 여행하는 법


물건보다 경험을 사는 것이 좋기에

갑자기 떠나고 싶은 때가 있을 것이다. 모두가 여행을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분명 많은 사람들이 여행의 설렘을 알고 있다. 누군가는 여행을 위해 돈을 벌고, 쉬는 날이면 어디로 놀러 갈지부터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렸을 때는 '놀러 간다'라는 말로 알게 된 여행. 해외든 국내든 하물며 집과 가까운 곳으로 놀러 가는 것조차 마음 벅차게 하는 것이다.


낯선 곳에서 낯선 풍경을 바라보고 낯선 것을 바라보는 것은 그 자체로 행복이 된다. 친구와 함께라도 좋고 혼자라도 좋다. 내 반복되는 일상의 고단함(혹자는 현실이라고 하지)을 잠시 잊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자체로 소위 힐링이라는 것이 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물건에 대한 욕구가 많이 없어진 이후로는 무언가를 사는 것보다 기억에 남는 경험을 얻는 것이 더 좋았다. 아마 여행은 낯선 곳을 경험하는 설렘, 맞닥뜨리는 새로운 경험을 사는 것일 테다. 친절한 사람들과의 대화와 짧지만 굵고 따뜻했던 관계들, 그리고 지역에서만 얻을 수 있는 지식들을 직접 보고 느끼는 것.





캐리어 하나에 넣은 미니멀 준비물

혼자 42일 간 유럽으로 떠났다. 캐리어 하나에 모든 짐을 넣어서.

대학 졸업 후 혼자 살던 하숙집을 나왔을 때였다. 잠시 직장에 들어가기 전까지 본가에 살기로 했다. 3년을 혼자 산 나의 짐은 1년간 실천한 미니멀 라이프 덕분에 큰 우체국 상자 하나와 28인치 트렁크 안에 모두 들어갈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때의 나로서는 꽤 큰돈을 아르바이트를 통해 모았다. 그 돈은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여행에 쓸 것이었다.


준비물은 최소한으로 했다. 숙소와 교통 티켓을 드라이브나 핸드폰에 넣을 수 있고 이북으로 여행책을 구매할 수 있는 것은 미니멀리스트에겐 행운이었다. 짐은 최소한으로 했고, 지갑과 핸드폰 이외에는 잃어버려도 괜찮을 정도로 간소하고 가볍게 준비했다. 소모품들은 여행용으로 쓰고 돌아올 수 있도록 적은 양을 준비했다. 옷은 최대한 겹쳐 입기 편하고, 이것 저것 돌려 입기 좋은 기본적인 것. 신발은 편하고 어디에나 잘 어울리는 운동화 하나.


미니멀리스트가 된 이후로는 다양한 옷을 입고 그곳에서 사진을 찍어서 남기고 싶은 마음을 비웠다. 그냥 가벼운 몸과 마음에 양보한 것이다. 정말 인상 깊은 곳은 몇 장 찍어 두었지만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것을 부담으로 남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곳의 감상을 풍부하게 느끼는 것, 온전히 그 순간을 느끼는 시간이 바로 그 무엇보다 값진 것이었다.



긴 여행이었지만 세세한 계획은 딱히 없었다. 꼭 가야 할 여행 스폿 따위는 없다. 이동하는 거리나 전날 침대에서 그 도시에서 가고 싶은 곳을 e-book이나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게 좋았고 굳이 찾지 않아도 마주치는 새로운 경험들이 그저 좋았다. 그저 책이나 인터넷을 휘 둘러보다가 내 마음이 끌리는 곳에 간다. 왠 걸. 짐이 줄고 계획이 적어져 신경 쓸 것이 줄어들자 모든 게 생생하게 느껴진다.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느껴지는 것도 더욱 생생하다. 몸이 가볍고 마음이 가벼우니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다. 내가 어떤 곳에서 감동을 느끼는지 알게 되고 내 감정들도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여행에서의 짧지만 굵은 관계들

나는 혼자 여행을 좋아한다. 혼자 여행할 때에는 익숙한 것 하나 없는 특별하고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우연히 마주치는 풍경들, 거리들, 그리고 가게와 건물들. 마구 글을 쓰고 싶어 지고, 이 새로움에 마음이 벅차오른다.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여행을 할 때에 좋은 기분을 누군가와 함께 느껴야 그 기분이 배가 된다고 한다. 그 말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나 또한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을 사람들과 나눌 때에도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친구나 가족과 여행을 하게 되면 그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추억을 쌓는 것이 우선인 느낌이 든다. 그들과 여행할 때는 그들에게 맞추어주는 게 행복하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여행지를 온전히 즐기지는 못했다.



혼자 여행할 때에 감정의 공유를 충족시켜주는 것은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었다. 여행에서 만나는 관계들은 특별하다.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신기하게도 벽이 사라진다. 특히 낯선 나라에 갔을 때 그렇다.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존재인 것만으로도 동네 사람을 만난 것처럼 친근하다. 일상에서는 그저 무표정으로 스쳐 지나갔을 인연이라도 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면 그렇게도 친근하고 반가워지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여행이라는 소재만으로 여행에 온전히 집중하는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다양한 삶의 모습을 알려주는 긍정적인 관계이면서도 자유로운 관계다. 여행하는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관계인 것이다. 깊지도 묵직하지도 않은. 그래서 서로에게 더욱 관대하고 열린 마음이 된다. 현실에서는 터무니없다고 넘겨버릴 수 있는 것이었더라도 멋진 가능성의 나래를 함께 펼치며 이야기할 수 있었다.


다시 일상 속에 돌아왔을 때 그들과 다시 만나 그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다시 회상하며 즐거워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과 깊은 연결고리를 맺지 않은 채, 그 순간을 오롯이 남기는 것도 좋다. 서로에게 짧지만 굵었던 관계가 되어 자유로웠던 그 기억만을 선물로 남기는 것이다. 그러면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이들은 여행지의 모습과 함께 마음속에 남아 따스한 추억이 된다. 결코 얕지 않지만 복잡해지지 않는 이러한 관계가 미니멀 라이프와 참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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