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rt de vivre

아름다움이 하는 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때, 샤를 페펭

by 은은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아름답다고 알려지기만 한 것 아니라, 직접 느낀 미적 경험. 아름다움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고들어 보고 싶다. 이것은 어째서 심장 찌르듯 눈물 나게 하면서도 감각과 의식을 깨어나게 하고, 왠지 모를 힘이 나게 하는 걸까?


감각은 아름다움을 느끼는 하나의 방식이다. 감각을 사랑하는 이유는 현재에 머물도록 만들어서다. ‘음미’라는 말이 나을 것 같다. 사소하게는 조금 더 향이 좋은 커피를 마시고, 보다 정성이 담긴 음식을 먹고, 꽃을 기르고 향을 부러 맡는 것. 그러나 아름답다!라고 소리 내어 말하게 될 때는, 조금 더 마음이 동할 때다. 숨이 막히게 하는 풍경. 그에 버금가는 그림. 내밀한 이야기를 하는 듯한 시를 읽고, 피아노 연주는 직접 가서 감상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어렵다면 영상으로 보며 듣는 게 좋다. 피아니스트의 혼이 함께 연주하는 느낌. 자연은 온몸으로 느끼는 것. 맨발로, 흙에 드러누워, 파도 속으로 들어가. 끝없이 펼쳐진 하늘과 바다에 겹쳐지는 노을. 감각적 즐거움과 감동이 함께 있는 것이 미학적 아름다움일까. 겉이 아름답지 않아도 그 속, 영혼과 같은 것이 너무 아름다워서, 다른 모든 미적 물체나 현상을 모두 제쳐버리는 것도 있다. 사랑이다.


사랑이 가장 아름답다. 조금 더 얕게는 ‘좋아함’이라는 감정까지. 깊고 얕은 잔잔한 마음들. 모두 아름다움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움 속에 있을 때는 그냥 충분해진다. 아름다움은 강제가 아닌 자연스러운 관용을, 마음에서 우러난 이해와 연결을 만든다.



샤를 페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때>에서, 아름다움이,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무능에서 우리를 구원한다고 말한다. 미적 경험을 통해 평상시에 외면하고 싶어 하던 것에 마침내 다가가게 된다고. 순간의 아름다움도, 그 어떤 것도 이내 ‘끝나리라는 사실’을 직면할 힘을 준다고. 저녁 햇살의 풍경이 한순간 찬란히 빛날 때, 그 찬란함과 자신에게 일어난 감정도 덧없이 사라진다는 것을 잘 아는 것처럼.


최근엔 짧은 영상으로 올라온 러시아 병사의 마지막 순간을 보게 됐다. 우크라이나의 살상 드론이 러시아 생존병들에게 포탄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기껏해야 내 나이쯤 되어보이는 병사는 드론을 보고 마지막으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싶다는 시늉을 한다. 언제든 폭탄을 터뜨릴 수 있는 드론에게 눈을 떼지 못한 채 떨리는 손으로 한 개비를 겨우 피운 뒤 웅크렸고, 곧 드론은 포탄을 떨어뜨린다. 아직은 인공지능 드론이 아니긴 했지만, 살상 드론이라니. 그것을 정말 인간에게 사용하고 있다니. 충격과 동시에, 그의 모습이 내 오빠였다면, 하는 생각을 했다. 속이 아프게 막혀왔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일 것이다. 그 누군가에겐 삶의 의미일 그들 한 명 한 명이 너무나도 쉽게 스러지는 모습을 보며, 전쟁을 시작한 이들로 인해 왜 이들이 희생당해야 하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할 수 없고, 어쩔 수 없는 것을 직시하고 인정하며,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한다. 북한 파병군들이 러-우 전쟁 파병은 한국 전쟁의 실전연습이라고 했다. 전쟁이 난다면 어떻게 할까, 하고 엄마에게 물으니 ‘어차피 네 오빠가 전장에 갈텐데, 살아서 뭐 해. 최대한 고통없이. . ’ 라고 대답한다. 내가 아는 가장 회복력이 좋고 낙관적인 엄마의 단호한 체념에 놀랐다. 삶에 대한 모든 긍정은 깊은 사랑에서 온 것이었다. 바위처럼 단단해 보였던 마음은 사랑 없인 이렇게 쉬이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시 명랑하게,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나도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일은 미리 생각하지 말라고 권한다. 오늘 하루를 즐겁게 사는 게 낫지 않겠냐고. 깊이 공감하지만, 감정은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일들에 지나치게 마음을 두지 말라는 것, 자주 읽고 듣는 이야기다. 자주 의식적으로 지우지만 마음 한켠 무의식 속에 슬픔으로 남아 있다.



지난주엔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 영상을 감상하다 울었다. 슬퍼서가 아니라, 아름다워서 나는 눈물이었다. 곡을 만든 사람의 영혼이, 연주자들의 영혼이 나의 영혼을 울리는 느낌이었다. 신기하게도 이후엔 마음이 씻은 듯 평온해졌다. 아! 아름다움엔 영혼이 담겨 있다. 그와 같은 아름다움을, 모든 사람들이 자주 느낄 수 있다면, 끔찍하고 슬픈 일들이 줄어들 것이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감옥에 울려 퍼진 아리아를 듣고 경이에 빠져있던 수감자들의 얼굴이 생각난다. 전장에, 회색빛 도시에, 아름다운 것들이 흐르고 있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아름다운 석양이 그들을 멈추게 하지는 않았을까.


샤를 페펭의 말처럼 ‘아름다움은 이해하지 않고 사랑하는 법을 알려준다. 아름다움은 우리를 치유하고 단련하며, 존재하는 것 그대로를 사랑할 힘과, 존재할지도 모를 무언가를 희망할 힘을 준다. 아름다움은 다시 우리를 세계로, 삶으로, 우리 자신에게로, 타인에게로 돌아가게 하고, 실존할 능력을 회복해 준다.’


불완전한 인간이 매일의 영혼을 청소하기 위해 명상을 하거나 기도를 한다. 달리기를 하거나 마구 글을 써 내려가기도 한다. 부지런한 영혼의 청소는 무엇으로든, 아름다움을 많이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할 것 같다. 만드는 것에 영혼이 담길 때, 그건 더 이상 자신이 아니게 되고, 소유할 수 없게 되고, 그것 자체로 아름답게 빛날 것이다. 그렇게 전해져 모두에게 있을, 같은 모양의 마음속 무언가를 일깨우지 않을까. 아름다움은 지금껏 수많은 모습으로 우리를 구원해 왔고, 구원하고 있으며 또 구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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