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rt de vivre

사라짐의 기쁨

드러내지 않기 혹은 사라짐의 기술 - 피에르 자위

by 은은


드러내지 않기

스펙타클에 열광하는 사회에서 드러내지 않기는 저항의 유쾌하고 필수적인 형식이다. 군중 속에서 익명의 산책자로 거니는 즐거움, 연인이 잠든 모습이나 아이들이 누군가 쳐다보는지도 모르는 채 놀이에 집중한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는 즐거움, 승리의 욕망에서 멀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안도감. 위선이나 엉큼함 혹은 신중한 계산과는 거리가 먼, 드물고, 모호하고, 한없이 귀중한 경험.



떠오르는 의문이 있었다. 드러내지 않은 채 그저 분위기를 관조하는 공간 속에서 느끼는 즐거움. 그것은 어디에서 온 걸까? 나 자신이 사라지고 풍경에 녹아드는 데서 오는 가벼운 자유.



서울 어느 밤거리 속 빠르게 지나쳐 가는 수십 명의 인파. 검은 강물 같았던.

환승 공항의 카페 구석자리에서 지켜본 흥미로운 일본-프랑스 가족.

앙제의 공원에서 뛰어놀던 젊은 엄마와 아이들.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대화하는 프랑스 가정 식사 자리에서 바라본 표정들과 제스처.

교실에서 아이들이 세상모르고 노는 모습- 글 쓰느라 집중한 작은 뒷모습.




다수 속에서 자신은 사라지고, 바라본 장면만이 남는다. 자기가 없는 그 장면은 아이러니하게 가장 고유한 시선으로 기억된다. 관음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순수한 관심으로, 또 그 누구도 의식할 필요 없이-그러므로 자기 인식이나 검열도 없이-자연스레 눈길 머물게 된 곳에서 타자로, 세계로 관심을 뻗는 소박한 기쁨이다. 책의 말을 빌려 ’설명할 필요가 없는, 본연의 충만한 의미로 이해되는 창조‘가 아닐까.


존재감을 드러내야만 ‘있다’라고 느껴지는 현대 사회에서 드러내지 않기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진정 살아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좋은 느낌은 다시 불러오고 싶지 않은가. 그 느낌을 재현하고 싶어 계속해서 모르는 타인들 속에 자기를 던져 넣거나, 아는 이들 속에서 잠시 사라짐을 선택했던 걸까?


온 세상에 속해 있으면서도 작은 사회에 속하지 않은 채, 무엇도 바랄 것 없는 편안한 마음으로, 눈에 담는 풍경을 사랑으로 바라보는 경험. 사이에 바람이 통할 수 있게 하는 시원한 틈으로, 그가 그로 존재하게 내버려 두는 사랑. 누구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곧 사라질 것들을 포착하는 것. 그런 여행을, 그런 여행과 같은 일상을 주기적으로 원했다.


봐달라고 주장하는 것들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흘러가는 흥미로운 장면들. 골라 달라고 소리치는 상품들과 떠들썩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물들보다, 드러내지 않은 채 세상을 바라보고 또 이루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아름다움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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