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다시, 창을 열며

두 번째 메뉴판을 걸다

by 응응

수요일 정오. 도서관의 나른한 공기를 가르는 것은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아니라, 온수기가 웅웅거리며 돌아가는 낮은 기계음입니다.

일주일 만에 다시 앞치마 끈을 질끈 묶습니다. 익숙한 원두 봉투를 뜯자 고소하고 쌉싸름한 향기가 좁은 탕비실을 가득 채웁니다. 작년 11월, 옷깃을 여미며 처음 이 공간에 들어섰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시작해 봄의 꽃향기, 여름의 장마, 가을의 낙엽을 지나 다시 겨울. 계절이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오는 동안 저의 수요일 오후 12시부터 3시는 오롯이 이곳을 향했습니다.

우리 카페의 메뉴판은 단촐하다 못해 투박합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리고 따뜻한라떼.

단 세 가지. 그 흔한 바닐라 시럽도, 휘핑크림도, 계절 한정 스무디도 없습니다. 이곳은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무료 카페니까요. 화려한 토핑이나 개인의 취향을 섬세하게 맞춘 커스텀 메뉴는 제공해 드릴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공짜니까 주는 대로 마시는 곳"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이 낡은 메뉴판 옆에 보이지 않는 '두 번째 메뉴판'을 마음속으로 걸어봅니다.

지난 1년여의 시간 동안 수많은 수요일을 보내며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단지 카페인을 섭취하기 위해, 혹은 공짜 커피를 마시기 위해 점심시간의 귀한 틈을 내어 줄을 서는 게 아니라는 것을요.

도서관 구석, 책과 책 사이에 숨어있는 이 작은 공간에서 건네지는 세 가지 메뉴에는 수십, 수백 가지의 사연이 녹아듭니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아메리카노'는 불합격 통보를 받은 날의 쓰린 속을 달래주는 위로였습니다. 식곤증과 사투를 벌이는 고시생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차가운 현실을 버티게 하는 각성제이자 다짐이었습니다. 육아에 지쳐 잠시 도서관으로 도망치듯 나온 아이 엄마에게 '따뜻한 라떼'는 맹물 같은 일상에 더해진 한 줌의 고소한 풍요로움이었습니다.

메뉴는 셋뿐이지만 그 안에 담기는 이야기는 결코 셋으로 나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도서관 카페의 넓은 창을 활짝 엽니다. 돈을 받지 않는 대신 당신의 안부를 받기로 했습니다. 화려한 맛은 없지만 당신의 마음에 가장 정확하게 가닿는 온도를 맞추기로 했습니다.

단조로운 세 가지 메뉴 뒤에 숨겨진 당신만 아는 그 맛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이 글은 커피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 커피를 손에 쥔 당신의 삶에 관한 기록입니다.

드르륵. 무거운 미닫이창이 열리자 도서관의 고요한 공기와 카페의 향기가 비로소 하나로 섞입니다. 창구 너머, 기다렸다는 듯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보입니다.

자, 이제 두 번째 영업을 시작합니다. 오늘 당신의 마음은 어떤 메뉴인가요?

"커피 나왔습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