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나를 데워주는 쓴맛의 위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수요일 오후 1시. 점심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 도서관 로비에 잠시 정적이 감도는 시간입니다. 창구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무게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카페의 주문 중 십중팔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입니다. 전투적으로 공부하는 수험생들에게 커피는 음료라기보다 혈관에 주입하는 '연료'에 가깝기에 벌컥벌컥 들이켤 수 있는 차가운 것을 선호하곤 합니다. 심지어 한겨울에도 "얼어 죽어도 아이스"를 외치는 손님이 태반이니까요.
하지만 소란스러운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면, 꼭 이렇게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찾는 분들이 찾아옵니다.
저는 선반에서 깨끗한 머그잔을 꺼내 온수기 아래에 둡니다. 기계가 웅웅거리며 진한 에스프레소 샷을 뱉어냅니다. 검은 액체가 바닥에 깔리고 그 위로 뜨거운 물이 합류합니다. 촤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김이 피어오릅니다. 아이스 음료를 만들 때는 느낄 수 없는 코끝을 간지럽히는 쌉싸름한 향기가 비로소 공간을 채웁니다.
이곳 도서관 카페의 따뜻한 아메리카노는 특별한 맛이 아닙니다. 좋은 머신을 쓰는 것도, 최고급 원두를 핸드드립으로 내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버튼 하나 누르면 나오는 투박한 커피입니다.
그런데도 이 뜨거운 쓴맛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된 풍경이 있습니다.
그들은 커피를 받자마자 마시지 않습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손으로 따뜻한 머그잔을 감싸 쥡니다.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도기 잔의 묵직한 온기를 가만히 느끼며 잠시 숨을 고릅니다. 그제야 굳어있던 어깨가 조금 내려가고, 미간의 주름이 펴집니다.
그 모습을 볼 때면 저는 생각합니다. 저분들에게 필요한 건 카페인이 아니라, '온기'였을지도 모르겠다고요.
차가운 현실, 냉정한 합격 여부, 쌀쌀맞은 세상의 시선 속에서 잔뜩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지금 손에 쥔 이 300ml의 뜨거움일지도 모릅니다.
인생이 달콤하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하루는 대체로 쓰고, 떫고, 목 넘김이 쉽지 않습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는 그 쓴맛을 닮았습니다. 도망치지 않고 그 쓴맛을 천천히, 호호 불어가며 삼키는 일. 그것이 어른의 하루를 버티는 방식이라는 것을 이곳의 손님들은 이미 알고 있는 듯합니다.
저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잔을 조심스럽게 건넸습니다. 손님은 역시나 두 손으로 컵을 받아 듭니다. 손끝에서 손끝으로, 찰나의 온기가 옮겨갑니다.
"감사합니다."
짧은 인사 뒤로 돌아선 그의 등이 조금은 덜 외로워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이 커피가 식기 전까지, 당신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데워지기를 바랍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