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오던 관계가 틀어져 마음 쓰여하던 지인이 있다.
그가 나에게 그 일을 털어놓았을 때 나는 이미 깨진 관계이고, 회복 불가능해 보이니 마음을 더 쓴다고해도 달라질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소 불편한 태도를 보이며 이 진심을 거부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마음을 다하는 게 무슨 소용이겠냐고 덧붙였다.
이미 결론이 정해진듯한 관계를 혼자 끙끙대고 있는 모습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시간이 흘렀고 얼마 전 그와의 대화에서 그 시절의 이야기가 우연히 나왔다.
그 이야기를 하는 말투나 표정은 차분했지만, 여전히 씁쓸함이 있었고 꽤 오랜시간 속앓이를 했던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런 그를 보며, 순간 아차 싶었다.
당시 나는 그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그의 문제가 마무리되길 더 바랐었다. 왜 마음을 과하게 쓰고 있는지, 이미 끝난 관계에 그토록 애달퍼하는지를 답답해했다.
그래서 놓쳤던 것 같다. 그가 얼마나 마음 아파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때 그에게 필요한 건 명쾌한 답이 아니라 그저 위로와 따뜻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나 역시도 그런 관계에 있었다.
수십 번을 생각해봐도 더 이상 마음 쓰지 않아야 할 사이에서, 혼자 끙끙대며 ‘해결’을 하려 했었다.
다시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책했고,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될까를 고민했고, 실제로 해결에 나섰지만 잘 되지 않아서 또 슬퍼하기도 했다.
이런 내 사정을 다아는 친구는 ‘이만하면 됐다’라고 말했다. 충분히 노력했고 그럼에도 나아지지 않는 관계라면, 이쯤에서 정리하는 게 맞다고. 그 이상의 정성은 나 자신을 더 힘들게 할 뿐이며 그건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이젠 그 관계보다 상처받았을 내 마음을 케어하라고.
나이가 들면 인간관계는 조금 느슨해지고 마음도 쉽게 조절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대범해지고 평온해지겠지 싶었다.
그런데 대범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작은 감정에 더 오래 머물고 사소한 것에 서운해하는 꽁기꽁기해진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런 마음 쓰는 것이 싫고, 두려워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기보다는 그저 나홀로 살아가는 게 편할 때도 있다.
누군가의 차가운 모습은 사실 그만큼 수많은 관계 속에서 다치고, 결국 스스로 외로운 길을 택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관계란, 변하기 마련이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인연에는 오고가는 때가 있다. 인생에서 만남과 이별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지나간 사람은 지나간대로, 또 새로운 사람을 기다리는 초연함도 필요하다.
이미 회복하기 어려운 관계 때문에 마음 고생하고 있는가.
그 또한 나의 욕심은 아닐지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흘러가는대로, 그렇게 흘려보낼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