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길로만 가고 있나요?

by D 카페인

우리 집은 지하철 역으로 치면 상왕십리역에 가장 가깝지만, 행당역, 신당역, 심지어 왕십리역도 걸어서 갈 수 있는 위치이다. 교통이 편리하구나, 싶을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그 어떤 역과도 완전 가깝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며칠 전 종로3가역에서 약속이 있었다. 종로3가역은 1,3,5호선 라인이니까 집에 돌아갈 때 3호선을 타서 을지로 3가에서 2호선을 갈아탄 후 상왕십리역에서 내려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같은 동네에 오래 살았던 지인이 그냥 5호선을 타고 행당역으로 가면 되지 않냐고 했다. 이론상은 맞지만, 행당역을 거의 이용하지 않아서 낯선 길보다는 갈아타야 하지만, 익숙한 길로 가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다시금 그 길을 알려주며 "그렇게 가는 게 훨씬 빠를 껄요? 한번 타보세요"라고 했고, 그때 마침 행당역으로 가는 5호선이 플랫폼으로 들어오고 있어서 "그래요? 그럼 오늘은 한번 타볼게요" 하면서 열차에 올라탔다.


종로3가에서 행당역까지는 5개 정류장으로 생각보다도 더 가까웠다.

행당역에 도착한 후 내가 이 동네에 오래 살면서도 행당역은 처음 왔구나를 새삼 깨달았다.

어느 출구로 나가야 할 지 정확히 몰랐으나 동네 주민 짬으로 대략 출구를 찾아 나섰다.

운 좋게도 지인이 알려준 그 방향이었고 이제 집 가는 길만 잘 찾아가자 싶었다.

밤이라 어둡고, 익숙하지 않은 길이라 헷갈렸지만 그래봤자 동네니까 아예 길을 잃을 건 없다는 생각에 대충 방향만 잡아서 걸었다.

그런데 아파트 사잇길은 그 길이 그 길 같고, 생각보다 감이 안 잡혔다.

할 수 없이 지나가는 주민분께 OOO 가려면 어디로 나가야 할까요? 라고 물었고,

산책 중이셨던 주민분은 친절하게 위치를 알려주며, "여기만 지나면 바로"라고 나에게 희망을 주셨다.

실제로 코너만 돌아서니 바로 아는 길이 보였고, 나는 미로의 출구를 발견한 사람처럼 순식간에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길을 헤매서 그렇지, 이렇게 나면 정말 빠르겠구나 싶었다.

익숙한 길, 아는 길로만 가는 게 사람의 심리이다.

굳이 다른 길로 가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 길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익숙하다는 이유에서 그 정도는 불편함은 감수할 만하다.

나 역시 지인의 말이 없었더라면, 그 순간 5호선 열차가 오지 않았더라면 늘 그렇듯 같은 방식의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 외 다른 생각은 못 했을테니까.


일상에서 그렇듯, 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가 가장 잘 아는 방법, 이전에 했던 성공 방식이 편한 게 사실이다.

그 방식이 최선이 아닐 수 있음에도 다른 방법을 찾지 않고, 그냥 같은 길로 가려고 하는 것.

지하철 5호선을 타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 길로 갈 생각은 전혀 못했을 것 같다. 그저 익숙한 2호선만 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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