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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금주 Nov 18. 2017

“따뜻한 녹차 한 잔이 그리운 계절”

제주 서귀포시에서 유기농 차를 재배하는 수망다원 강경민 농부





“녹차는 우리 몸에 이로운 것만 있지,

해로운 건 하나도 없거든요.

혼자 마셔도 좋고, 같이 마시면 더 좋고...

따뜻하게 마시면 순환기 혈관계통에 특히 좋습니다.

건강을 생각해서 차 마시는 걸 생활화하면 좋을 텐데......”



한참 차의 좋은 점을 설명하던 강경민 농부는 말끝을 흐렸다. 유기농으로 차나무를 키우며 겪어왔을 마음고생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하루빨리 차도 커피처럼 대중화돼 사랑받기를 바라는 마음까지도.



일본의 사립 명문인 간사이대학교로 유학을 떠났던 스물셋의 청년은, 당시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일본문화 탐방 중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바로 다도(茶道).


알 수 없는 시샘과 질투가 밀려왔다. 유래로 보나 역사로 보나 일본보다 한국이 먼저 아니었나? 그런데 계승도, 발전도, 대중화도 제대로 이루지를 못했다. 그때의 자괴감은 경영학도였던 그를 농부의 삶으로 이끌었다.


“조상님께 차례(茶禮)를 올린다 할 때 차자도, 불교에서 헌다(獻茶) 할 때 다자도 모두 차(茶)자예요. 원래는 차를 올렸거든요. 나중에서야 술로 대체된 겁니다.”


우리의 차는 ‘삼국사기’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당나라 사신으로 떠났던 김대렴이 차 씨앗을 가지고 돌아와 왕명으로 지리산 자락에 심은 것이 828년. 통일신라 흥덕왕 때다. 고려시대는 귀족 평민 구분 없이 차를 마시던 황금기였다.

그러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쇠락기를 맞는데, 바로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 때문. 차를 재배하는 사원이 급감하자, 결국 모든 관혼상제(冠婚喪祭)에 차 대신 술이 사용됐다. 그의 차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유학을 마치고 고향인 제주도로 돌아와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온도 편차가 심한 150~300 고지에서 향도 맛도 깊어지는 차. 특히 주성분인 카테킨은 유기물 함량이 많은 화산토에서 높아진다. 기후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차나무 재배의 최적지가 바로 고향 제주도였다.


그렇게 200 고지 남원읍 수망리에 2만 평의 토지를 매입한 것이 2006년. 당신들처럼 농부가 되겠다고 하니 부모님의 반대가 극심했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익숙했던 귤 농사가 아닌 녹차 농사라니? 차 농사는 대기업에서나 하는 거라며, 집안 말아먹는다고 호통 치셨다. 거래처였던 농협 직원들까지 찾아다니며 아들 녀석 좀 말려 달라 하셨다. 지인들까지도 귤 농사나 계속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극구 만류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냥 차가 좋아서다.



“아스라이 안개가 올라오는 새벽에 초록빛 차밭을 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특히 영롱한 이파리가 올라오는 초봄의 새벽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죠. 추운 겨울을 이기고 조용히 올라와, 물방울이 맺힌 어린잎들을 보면 눈물 나게 좋아요. 한 잎 따 먹으면 기가 막히죠.”


하지만 행복은 일상의 고통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한 순간일 뿐. 무농약과 유기농을 거치며 그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마시면 바로 몸에 흡수되는 차의 특성상 무조건 친환경이라야 했기에 장마철이면 찾아오는 배추벌레, 자벌레, 잎마리 벌레와 무수히도 싸웠다. 키가 작은 녹차 나무는 태풍에는 강했지만, 병해충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한방 재료를 섞은 미생물 발효액을 주고 수확 시기를 잘 조절하는 수밖에. 실수담을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채엽기 조작에 서툴렀던 초창기 때가 제일 힘들었다. 너무 많이 깎는 바람에 5개 나올 순이 3-4개밖에 나오지를 않았다. 채엽기 사용으로 인건비는 절약됐지만, 동시에 수확량도 줄어들었다.


지금이라고 농사가 쉬운 것은 아니다.

아직도 멀고 어렵기만 하다.

그래도 매년 봄은 찾아오고,

어린잎이 올라오면 다시금 행복해진다.



감칠맛이 일품인 제주 차의 첫물차는 4월 말이나 5월 초다. 찻잎은 음력 청명절(4월 5일) 전후로 따는 것을 최고로 치는데, 그는 55~60일 사이를 두고 두물차, 세물차, 네물차로 나눠 4번 수확한다.

잎차는 뜨거운 물에서 올라오는 수증기로 찌고 덖는 증제 방식으로 만들고, 가루차는 마이크로파를 이용해 수분을 빼주어 본연 색을 유지한다. 수망다원의 ‘제주 차’를 맛본 사람들은 모두 다시 찾는다.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100% 유기농에 향도 맛도 깊기 때문이다. 한 번도 맛을 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맛 본 사람은 없다.


차를 우릴 때는 찻물의 온도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60~70도가 가장 적당하고, 그 이상이면 떫은맛이 강해진다. 전통 다기(茶器)의 물 식힘 사발인 숙우가 따로 존재하는 이유다. 그러니 차를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차의 3절인 색(色), 향(香), 미(味)가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얼마 전에 일본에 다녀왔는데요. 깜짝 놀랐습니다. 2020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음료시장이 더 활성화됐더라고요. 찻잎 수출량도 4~5배 늘었다고 해요. 점심시간이면 텀블러에 티백 하나 넣고 물을 가득 채워서들 마셔요. 차(茶)는 어렵지도 않고, 고급문화도 아니거든요. 그냥 대중문화죠.”




우리나라 차 시장은 약 500억 원 정도.

그에 비해 국내 커피 시장은 10조나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루 녹차의 소비가 점점 늘고 있다는 것. 커피는 물론 쿠키나 빵 같은 디저트에 다양하게 응용되어 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봄에는 차잎을 따서 덖고 마시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강경민 농부는 앞으로는 가을, 겨울에도 가루녹차를 이용해 비누나 향초를 만들어볼 계획이다. 남들은 그것이 바로 6차 산업이라고 거창하게 말하지만, 그가 부지런을 떠는 이유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녹차를 다른 사람도 좋아하기를 바라고, 내 몸에 좋은 차가 다른 사람 몸에도 좋기를 바라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차를 사랑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조선시대 유명한 다인(茶人)으로 알려진 초의선사(草衣禪師)는, 차를 찬양하며 지은 시집 ‘동다송(東茶頌)’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꽃이 봄의 서곡이라면, 잎은 그 진수다. 잎 하면 초록이요, 초록하면 녹차 잎이 제일이다.”

따뜻한 차 한 잔이 어울리는 계절. 색과 향과 맛을 천천히 음미하며 다도 3절을 실행에 옮기자니, 이른 새벽, 제주의 차 밭에서 행복해하는 한 농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의 행복이 입 안 가득 향긋하게 퍼진다.






제75-1-131호

www.enviagro.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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