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창업가의 스타트업 이야기

6. 타운홀 미팅

by 이응진

MGK 창업 후 8개월이 지난 시점이었으니, 2026년 6월로 기억된다. 전 직원 앞에서 회사의 현 상황을 공유하기 위한 타운홀 미팅이 있기 바로 전 날, 나는 상훈과 함께 내 사무실 근처에 있는 가성비 좋기로 유명한 오마카세 일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다. 고생을 많이 하고 있는 상훈을 격려하기위해 내가 마련한 자리였다.


상훈은 약속 시간인 7시보다 5분쯤 일찍 도착해, 먼저 와 자리에 앉아 있던 나를 보며 악수를 청했다.


"먼저 도착하려고 서둘렀는데 먼저 와 계셨네요. 이 변호사님과 이렇게 술자리를 갖는 건 처음입니다. 술은 잘 하시나요?"


나는 미리 주문해서 테이블 위에 놓여진 일품진로를 상훈의 잔에 따라주었다.


"사실 대학 다닐 때에는 생맥주 500cc가 치사량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사법연수원, 군법무관, 변호사 생활 거치면서 나에게 숨은 잠재력(?) 같은 것이 있다는 걸 알았죠. 하하. 한창 때에는 폭탄주 스무 잔을 마셔도 거뜬했었습니다. 그러다 7년 전쯤 당뇨와 고혈압 진단을 받아서 그 후부터는 가급적 술자리는 피하려 하고 있어요. 고지혈증까지 함께... 성인병 3종 세트라고 들어보셨죠? 그러다보니 주량이 엄청 줄더군요."


한 시간 정도 MGK 창업 관련된 뒷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다가 상훈이 나즈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변호사님, 사실 내일 아침에 전직원들과 함께 첫 타운홀 미팅을 갖기로 했습니다. 아직은 사장 포함 임직원 다섯 명짜리 회사이긴 하지만, 그래도 모든 임직원들이 다 모이는 자리이니 '타운홀 미팅'이 맞긴 맞네요. 하하"


나는 소주가 반쯤 남아 있는 소줏잔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아, 그러셨군요. 잘 하셨습니다. 그런데 직원들이 무슨 질문을 할지는 좀 생각해 보셨나요? 뭐... 사실 지금 상황에서 직원들이 어떤 질문을 할지는 예상하기가 그리 어렵진 않긴 합니다. 회사가 어려운데 김 대표님이 어떤 대책을 갖고 있는지... 겠죠?"


짧은 한숨을 뱉어내며, 상훈이 말했다.


"에효... 사실, 창업자가 마법의 지팡이와 멋진 주문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법사가 아니쟎습니까? 카드를 꼽아넣고 금액과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원하는 돈이 얼마든지 나오는 현금자동지급기도 더더욱 아니구요... 저는 내일 직원들에게 최대한 솔직해지려고 합니다.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을 그대로 직원들에게 공유하고, 그 어려움들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직원들의 생각을 들어 보려고 합니다. 직원들이 자기가 있던 회사를 떠나 MGK로 오면서 직원들도 뭔가 믿음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그것이 제 자금력에 대한 믿음만은 아니었을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나도 이랬어야 했다. 상훈은 어떻게 이런 자신감을 갖고 있을까? 놀라웠다.


상훈이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해온 것은 이때였다.


"변호사님, 제가 듣기로는 변호사님도 얼마전 제조업체를 하나 인수하셨다가 어려움을 겪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매사에 신중하고 냉철한 판단력을 갖고 계신 변호사님 같은 분이 그런 실패를 겪으셨다는 것에 좀 놀랐습니다. 그 때 얘기를 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술잔을 들다 말고 상훈을 바라 보았다.


"그 얘기 들으시려면 오늘 술 많이 하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내일 아침 타운홀 미팅도 있으니 김 대표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음에 드리는 것으로 하는 게 좋겠네요... 타운홀 미팅에 관한 김 대표님 생각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내일 타운홀 미팅이 의미있는 자리가 될 것 같네요. 방향은 정해지신 것 같지만 그래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실 테니 오늘은 이만 보내드리는 게 좋겠습니다. 오늘 너무 즐거웠습니다."



음식점 앞에서 상훈과 작별인사를 나눈 후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의외였다.

김 대표가 어떻게 그걸 알고 있었지...? 상훈의 질문을 듣는 순간, 6년 전 내 모습이 마치 어제 일처럼 아프게 떠올랐다. 그 당시 나는 매월 15일과 30일에 돌아오는 어음을 어떻게 막을지를 걱정하며 거의 매일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도, 낮에는 아무렇지 않은 척 직원들을 대했다. 회사의 로고가 또렷하게 박혀있는 작업용 점퍼를 입고,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어색한) 미소를 띄우며 작업라인을 돌아보고 있던 나에게, 한달 전쯤 회사를 떠난 공장장을 대신해 공장장 업무를 맡고 있었던 김 팀장이 조심스럽게 '대표님...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우리 회사... 괜찮은 거 맞죠?'라고 물어왔을 때, 나는 '큰 문제 없으니 걱정 마시고, 김 팀장은 이번 주문 건 납품기일 지키는 데 문제 없도록 직원들 잘 독려해 주세요.'라고 짧고 건조한 대답만을 남기고 사장실로 돌아왔다. 리더의 역할은 팀원들을 안심시키는 것이고, 대책이 확실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직원들과 고민이나 걱정을 공유하면 가뜩이나 어려운 회사를 더 어렵게 할 뿐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아뇨 전혀 괜찮지 않습니다.'라고 김 팀장에게 이야기했어야 했다. 직원들은 절대 내 입에서 나오는 말만으로 회사의 상태를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내가 담배를 피우러 흡연구역으로 가는 빈도, 직원 없는 곳으로 가서 전화를 받는 내 모습, 어쩌다 새어나오는 짧은 한숨... 이런 조그마한 단서들로부터 직원들은 깜짝 놀랄 정도로 정확하게 회사의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다. 직원들은 불안과 소외감을 느꼈고, 불안은 불신으로 변질됐다. 결국 내가 홀로 고심하여 마련해 두었던 ‘대책’이 실현되지 않아 회사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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