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창업가의 스타트업 이야기

7. 떠나는 사람들

by 이응진


DH테크 제품 리콜 문제를 겨우 수습하고 한숨 돌리려던 찰나, 더 큰 파도가 상훈을 덮쳤다. MGK의 2호 사원이자 영업팀을 총괄하던 정 이사가 타운홀 미팅이 있은지 얼마 안되어 조용히 사직서를 내민 것이다. 국내 대형 공구 유통사에서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여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상훈에게는 단순한 직원의 퇴사가 아니었다. 낯선 스웨덴 제품을 들고 맨땅에 헤딩하며 함께 시장을 개척했던 동지의 이탈이었다.




“어떻게 저한테 이럴 수 있죠? 얼마 전 리콜 사태 때도 같이 밤새우면서 대책을 고민했었는데...”


오전 9시쯤 내 사무실을 급하게 찾아온 상훈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눈에는 서운함을 넘어선 깊은 배신감이 서려 있었다. 특히나 유통업에서 핵심 영업 인력의 퇴사는 회사의 매출과 직결되는 치명타다. ‘대표인 내가 부족해서 떠나는 걸까?’, '타운홀 미팅에서 나에게 실망한 걸까?'라는 자책감이 밤새 그를 괴롭혔을 것이다.


나 역시 사업을 할 때, 믿고 의지했던 공장장이 더 좋은 조건을 찾아 경쟁사로 떠나는 것을 보며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서로 마음이 통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돈’과 ‘안정’이라는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얼마나 냉혹한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깨달았을 때 느꼈던 배신감과 허탈감은 아프도록 컸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 깨달았다. 그들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창업가에게 회사는 자신의 모든 것이지만, 직원에게는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이 냉정한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진짜 리더십은 시작된다. 나는 상훈의 이야기를 듣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김 대표님, 제 경험으로는, 물론 다른 조건들이 충족되어 있을 때에는 그것들이 관계를 더 강화하는 촉매 역할을 하긴 합니다만, 회사와 직원 간의 관계는 절대 '정'이나 '의리'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항상 서로 긴장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최선의 선택'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그 관계가 유지됩니다. 우리가 많이 듣는 건배사 아시죠? '우리가 남이가?' 하지만 우리는 결국... 남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 생각이 깨지는 순간, 회사와 직원 간의 관계를 유지하게 했던 건강한 긴장 관계가 사라지고, 관계의 힘이 오히려 약해집니다."


비서가 가져온 두번 째 커피잔을 들면서 상훈에게 물었다.


"혹시 정 이사에게 스톡옵션이나 주식을 줬나요?”


“음... 아직 스톡옵션은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주식도 주지 않았구요. 아직 회사가 영업적으로나 재무적으로나 위기 상황이라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네요."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평소에 MGK가 단순한 작업용 장갑 수입상이 아니라, 산업 현장에서의 안전 솔루션 프로바이더를 지향하고 있고 한국 시장뿐만 아니라 아시아 시장에서의 메이저 플레이어가 될 것이라는 MGK의 비전에 대해 얼마나 자주 이야기했나요? 몇일 전 있었던 타운홀 미팅이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 아주 좋은 자리였을 텐데요...”


상훈은 또다시 얼마간 침묵하다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이번 타운홀 미팅은 제가 평생 했던 회의들 중 가장 힘든 회의였습니다... 저는 먼저 직원들에게 우리가 지금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고, 자금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으며, 지금의 상태에 획기적인 변화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서너달 후에는 월급을 줄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다고 솔직히 이야기 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실패할지도 모른다고도 했습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상훈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를 보며 상훈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직원들 중 몇몇은 한숨을 쉬더군요. 정 이사도 그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은 어쩌면 창업 시점부터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어려움입니다. 단지 마주하지 않기를 바랬던 어려움일뿐이죠. 지금도 의미있는 기업고객 한 두 곳만 더 확보하여 월 매출을 5천만원 수준으로만 끌어 올리게 되면 바로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수 있거든요. 그 시점이 창업할 때 보수적으로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늦게 오고 있는 것인데, 한국 시장에 제품을 처음 론칭하는 회사라면 당연히 겪을 수 있는 난관이에요. 그렇지 않나요, 이 변호사님? 이런 상황에서 사업을 포기하려면 아예 처음부터 창업을 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


상훈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저는 직원들에게, 그리고 저 자신에게, 약속했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필요하다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걸어 추가 자금을 마련할 겁니다. 하나 좋은 소식은, 지난 번 리콜 사태가 있었던 DH테크가 월 구매량을 늘이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품에 하자가 발생하긴 했지만 DH테크의 작업환경을 세밀하게 검토한 후에 작업환경에 딱 맞는 제품으로 무상 교체를 해준 MGK와 본사의 대응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창업 직후부터 설득 작업을 계속 해온 K엔지니어링도 최근 저의 제품을 현장에서 테스트 해보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알고보니 DH테크의 공장장이 K엔지니어링의 공장장과 친분이 있다고 하네요. 업계 모임에서 저희 Magic Glove를 적극 추천했다고 합니다. 정말 감사한 일이죠."


상훈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실패를 앞에 둔 창업자의 눈이 아니라 분명 성공을 향해 가고 있는 창업자의 확신에 찬 눈이었다.


"그런 소식들까지 직원들과 모두 공유하신 거죠? 그런데 왜 정 이사는 타운홀 미팅 후에 회사를 떠나기로 했을까요?"


얼굴에 살짝 홍조를 띨 정도로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던 상훈은 목이 말랐는지 앞에 있던 생수를 들어 몇 모금 들이켰다.


"아무튼, 떠나는 사람을 붙잡으려 너무 애쓰지 마세요. 떠나려고 결정한 사람의 마음을 돌리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정말 수백 가지 나름의 이유가 있는 거 같더라구요. 아마 정 이사는 영업을 총괄하는 직책을 맡고 있긴 하지만, DH테크 어카운트를 개척하고 리콜 사태 관려내서 고객과의 소통을 너무나도 잘 해낸 박희수 차장과의 뭔가 모를 경쟁심 같은 것을 갖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영업팀의 중심이 자신으로부터 박 차장에게로 옮겨가는... 뭔가 그런 느낌적 느낌? 만약에 정말 그것이 이유가 되었다면, 정 이사는 영업을 총괄할 사람은 아닙니다."


나는 상훈쪽으로 더 몸을 기울여 앉으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대신, 남아있는 사람들이 왜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명확하게 만들어주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스타트업의 인재 관리는 ‘형, 동생’ 하는 의리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회사가 성장하는 만큼 개인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확신’과 그 성장의 과실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믿음’을 시스템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서 회의 초반에 스톡옵션이나 주식 분배 관련해서 여쭤본 거구요."




이전 06화실패한 창업가의 스타트업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