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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eIssue Oct 05. 2020

고양이도 이가 튼튼해야

  매일 세 고양이들의 양치를 시키는 일은 원래 아내 담당이었다. 대신에 나는 매일 고양이들 화장실 청소를 하는 것이 우리 부부의 룰이었다. 그렇게 우린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나는 고양이 화장실 삽을 들고 화장실 청소를 했고 아내는 세 고양이를 쫓아다니면서 양치를 시켰다.


  최근, 아내의 뱃속에 아기가 자라면서 이젠 고양이들 양치를 시키는 일도 내가 인수인계(?)를 받게 되었다. 아기 소식에 기뻐서였는지 앞으로는 애들 양치도 내가 시키겠다고 내 입으로 흔쾌히 말했다. 고양이들에 관한 일은 대부분 직접 나서는 아내도 이번만큼은 그게 좋겠다고 했다. 지금이야 괜찮지만, 나중에 배 불러서 양치가 싫다며 집안 구석구석을 손을 피해 도망 다니는 녀석들 쫓아다니기는 부담스럽겠다며 말이다.

  가끔 한 번씩 칫솔을 들고 다가가기만 해도 여시같이 눈치채고 캣타워에 들어가 몇 시간을 안 나오는 놈들을 기다리거나, 건조기나 세탁기까지 들락날락거리면서 도망 다니는 녀석들을 생각하면 배가 부른 아내보다는 내가 하는 게 백번 맞는 일이었다.

  아직까진 한, 두 마리 정도는 아내가 도와주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이제 내가 세 고양이의 양치도 맡게 되었다.


  고양이 양치가 복잡한 과정은 아닌다. 고양이들을 옆으로 눕히고, 엄지와 검지로 입을 살짝 벌리고, 입안에 보이는 이에 치약을 묻힌 칫솔을 살살살 문지르면 된다. 그리고 매일 이렇게 양치를 시키면서 세 아들들이 이빨이 아프지 않고 튼튼하게 해 달라며 기도도 같이 하게 된다.


  사실 첫째와 둘째는 발치를 한 번씩 한 경험이 있다. 수의사님이 치석이 많이 껴서 발치를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놔두면 통증이 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지금도 통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고민할 필요도 없는 결정이었다. 그래서 첫째, 둘째는 딱 봐도 입안이 휑하다. 수의사님은 괜찮을 거라고 했지만 이를 빼고 나서 혹시라도 건사료가 불편할까 봐 하루에 한 번은 습식사료를 주고 있다. 그래도 가끔은 없는 이로 까득까득 건사료를 잘 씹어먹는 거 보면 신기하기도 한다.

  이렇게 매일을 양치를 잘 시켜줘도 세 고양이들 이에는 치석이 끼고 있는 걸 보며 답답할 노릇이다. 악화돼서 첫째와 둘째가 또 한 번 발치를 해야 하면 어쩌나, 셋째도 점점 나이를 먹어가는데 이 녀석도 발치를 해야 하면 어쩌나 걱정이다.

  최근에는 첫째의 이와 잇몸 사이가 까맣길래 급하게 병원에 쫓아간 적이 있었다. 다행히 수의사 샘은 단순한 치태라며 별 문제없다고 했다. 이렇게 날마다 양치를 시키면서 날마다 세 아들들 이 걱정도 같이 하고 있다. 말도 못 하는 세 고양이들이 치통으로 아파하면 어쩌나, 이가 없어서 못 먹으면 어쩌나..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아플 일이 없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모두가 이 때문에 고생한 적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진짜로 이가 많이 아파서 고생을 하던, 이 아픈 건 참을 만 한데 치과 치료비 때문에 맘고생을 하던, 아니면 이가 살짝 불편한데 이거 또 치료비 왕창 깨지는 거 아니냐며 걱정을 했건 말이다. 내 이 관리도 잘해야 되는데 세 아들들 이 관리도 잘해야 되니 더 부지런해야겠다.


  누릴 수 있는 오복 중에 치복도 있다는데, 그 치복이 우리 고양이들한테도 가득가득했으면 좋겠다.

  내 고양이들도 이가 튼튼해야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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