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seIssue Nov 12. 2020

가까이 있어도 먼 고양이 사이

합사에 실패한 집사입니다.


  베스트셀러들을 보면 그 당시 이슈, 관심사, 고민거리들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힐링에서 인문학, 경제까지 다양한 주제가 담긴 베스트셀러들 사이 빠지지 않고 자리 잡고 있는 주제가 바로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그만큼 타인과 관계 맺는 것이 많이 이들의 관심사이고, 고민거리고, 스트레스라는 말이기도 한다.

  고양이 셋과 함께 사는 다묘가정 집사가 보기에는 관계에 관한 어려움은 사람들 사이에서만 있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집 고양이들도 묘간관계(?) 애를 먹고 있는 것을 보면, 고양이들 사이에 관계도 쉽지 않은 문제인가 보다.





  위 사진은 우리 둘째랑 막내가 같이 자고 있는 모습이다. 고양이가 있는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 같지만 내게 이 사진은 기적과도 같다. 이 사진을 기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둘째랑 셋째는 서로 좋아하질 않아 붙어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말하기에 맘이 쓰리긴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서로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서로 싫어한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별 일 없이 지내다가도 둘째와 막내 사이에는 한 번씩 불이 붙는다. 

  멀찍이서 막내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본 둘째는 바짝 긴장을 한다. 더 가까이 오면 발을 뻗어 더는 가까이 못 오게 막내를 막고, 그래도 더 다가오면 하악질을 하면서 싫다고 자기표현을 강하게 한다.

  둘째만 이러는 건 아니다. 한 성깔하는 막내도 형에게 지고만 있진 않는다. 둘째형과 눈싸움이 붙는 순간 반항적인 눈을 하고 형에게 슬금슬금 다가온다. 형의 싫은 티도 마다하지 않고 형을 노려보면서 형 주변을 빙빙 돈다. 그러다 입을 앙- 하고 벌려 형을 물기도 하고, 앞발로 툭툭 건들기도 한다. 

  숨 막히는 신경전은 내가 가서 둘을 떼어놓거나, 둘 중 하나가 자리를 피해야 끝이 난다.


  위에 사진처럼 둘이 같이 포개서 자는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다시 생각해봐도 신기할 따름이다.


  둘째와 막내가 한 집에 산 지도 벌써 4년. 가까워질 법도 하고 정이 들 법도 한데도 여전히 둘이 신경전을 펼치는 걸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둘 사이의 불화가 내 잘못인 것 같아 미안할 뿐이다. 냉정하게 난 합사에 실패한 집사인 듯하다.


  

  나중에야 알아본 고양이 합사 과정은 긴 시간이 필요한 차분한 일이었다. 먼 거리에서부터 서로를 관찰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후 서로의 냄새가 묻은 물건을 교환하며 서로에게 익숙해질 시간을 충분히 갖게 하는 것이 합사의 정석이었다. 멀찍이서 바라보던 거리가 조금 가까이, 조금 가까이. 이런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되는 것이 실패 없는 고양이 합사 방법이었다. TV에서 본 수의사가 알려준 고양이 합사는 이렇게 사골 우려내듯 긴 시간과 인내가 필요로 했다.


  나의 합사는 그렇지 못했다. 하루 이틀 펜스를 사이에 두고 첫인사를 나눈 후 우리 고양이들은 바로 같이 살기 시작이었다. 난 미련하게도 처음엔 대면 대면하던 사이가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을 줄만 알았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도 쉬 친해지지 못하는 둘 사이도 단순히 두 녀석의 성격 탓이라고도 생각했다. 예민하면서 조심성 많고 얌전한 둘째, 시도 때도 없이 달리고 점프하고 뒹구는 활동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막내. 이 성격 차도 시간이 금방 해결해 주겠거니 했다.

  이제야, 둘 사이가 좀처럼 가까워지지 못하는 것이 내 탓이란 생각이 든다. 좀 더 신중하게 합사 과정을 거쳤더라면, 내가 좀 더 세심했더라면, 좀 더 차분하게 생각했더라면 둘째와 막내가 더 편안하게 지내지 않았을까 싶다.




  고양이들과 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내가 잘해준 것보다는 못해준 것들이 가슴에 맺힌다. 매일을 같이 살면서도 좀처럼 가까워지지 못하는 둘째와 막내 사이 역시 내 가슴 한편에 맺혀 지워지질 않는다. 내 역할에 따라 좀 더 나은 모습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가 남아있다.

  별 수 있겠는가. 나를 봐서라도 형이랑, 동생이랑 친하게 지내라고 고양이들 어르고 달랠 수밖에. 동시에 시간이 지나면 아무도 모르게 쌓인다는 그 무서운 정이란 놈이 우리 아들들 우애도 다져주길 기대해볼 수밖에.


  나의 인간관계도 딱히 자랑할만할 것이 없다.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려를 노력보다는 혼자 지내는 편안함이 더 좋았다. 이런 인간관계에서의 게으름이 가져온 결과는 중요한 약속이 아니면 좀처럼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천상 집돌이었다. 덕분에 요즘 같은 언택트 시대에 누구보다 성실하게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모범시민이기도 했지만, 이런 성격이 딱히 내세울만한 것 같지는 않다.

  누가 내 아들들 아니랄까 봐 이런 못난 성격까지 닮아버렸나 보다. 서로 살갑게 지내보려고 노력이나 좀 해볼 것이지 야속한 녀석들. 괜스레 허점투성이인 집사의 맘이 허무하다. 


  아들들아, 싸우지들 말자.

매거진의 이전글 애기가 태어나면 고양이는 어떻게 할꺼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