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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eIssue Nov 16. 2020

길고양이 밥 주지 마세요!

 

 저녁 약속이 있어 집을 나설 때, 지하주차장에서 길고양이 한 마리를 마주쳤다. 차 보닛 위에서 식빵 굽는 자세를 하고 쉬고 있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도 지하주차장에 길고양이 한 마리가 눈에 띈다. 이번엔 차 밑에서 발라당 누워서 쉬고 있었다. 집을 나설 때와 들어올 때 마주친 고양이의 무늬가 비슷하다. 아마도 같은 녀석이었던 것 같다. 그 전날에도 창 밖으로 길고양이 두 마리가 보였다. 밤이었고 멀어 얼마나 큰지, 어떤 색인지는 보이지 않았다. 가로등에 비춰 어렴풋이 보인 그 두 마리는 두리번두리번 눈치를 살펴가면서 길 건너 아파트 안으로 살금살금 들어갔다.


  길고양이들이 추위를 피해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시작하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어떤 날이면 롱패딩에, 핫팩에 내복까지, 다 갖춰봐도 추위를 막을 길 없는 겨울. 그 계절이 길 위에서 나고 자라는 작은 생명에겐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엘리베이터 앞 게시판에 길고양이 밥을 주지 말라는 안내글이 게시되었다. 길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주는 사람, 소위 말하는 캣맘이나 캣대디와 이들이 길고양이를 돌보는 행동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갈등이 있다는 사례를 몇 번 접하긴 했지만,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 같다. 뭐 우리 아파트 같은 경우 갈등이나 마찰까진 아니고 간단한 민원인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말라는 이유는 간단하다. 차에 오르내리며 주는 피해, 늦은 저녁에 고양이들이 울면서 발생하는 소음, 쓰레기 봉지를 파헤쳐서 생기는 문제 등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따뜻한 곳을 찾아 지하주차장이나 아파트 단지 내를 서성이다 사람들 눈에 자주 띄다 보니 민원까지 발생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길고양이에 의한 피해 호소나 사람들이 사는 곳 가까이에 밥을 줘서 모이지 않게 해 달라는 민원이 절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이 길고양이들을 좋아하거나 애처롭게 바라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날카로운 울음소리나 흩뿌려진 쓰레기에 불만이 쌓이는 건 당연하다. 게시판에 붙은 안내글의 내용이 이해는 간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렇게 미움 아닌 미움을 받는 길고양이들을 떠올리니 속이 쓰다.



  나 역시 나름 고양이 박사(?)라고 자부하고 있는 집사 중 한 명이다. 틈나는 대로 고양이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찾아보고, 또 여기저기서 접하고 있다. 그중에는 당연히 길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캣맘이나 캣대디들 처럼 따로 챙겨준 적은 없었지만, 이야기를 자주 접해 친근해서인지 아니면 내가 고양이를 좋아해서인지 길에서 길고양이들을 만나면 발걸음이 잠시 멈춰지곤 했다. 마주칠 때면 항상 응원을 해줬던 것 같다. 아프지 말아라, 차 사고 나지 않게 조심해라, 따뜻한 데 잘 찾아라, 어디서 해코지 당하지 말아라.


  챙겨준 거 하나 없이 속으로 응원 몇 마디 해준 것이 다지만, 길고양이 밥을 주지 말라는 안내문 앞에서 생각이 많아졌다. 모두의 입장이 이해가 가서 어려웠고, 당장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없어 허무했다.

 



  돈이 셀 수도 없이 많아서 한적한 곳에 어마어마하게 넓은 땅을 사고, 펜스를 치고, 안에 길고양이들이 먹고 잘 수 있게 해 주고, 사료랑 물도 맘껏 먹게 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내한테 그런 능력은 없다. 그랬으면 좋겠다 하고 헛생각을 잠시 할 뿐이다.

  

  고양이들이 사람 말을 알아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도 같이 해본다. 

  차에는 올라가면 안 되고, 해가 지고 나서는 울면 사람들이 미워해. 음식 냄새가 나도 쓰레기봉투는 해집어 놓으면 안 되고, 밥은 여기 사람들 집에서 떨어진 곳에 챙겨둘 테니까 되도록이면 이 근처에서만 놀아.

  이런 규칙들을 고양이들이 잘 지켜준다면 이곳 같이 사람이 많은 주택단지에서도 좀 더 수월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또 다른 헛생각도 들었다.



  유난히도 추운 작년 겨울에 수많은 길고양이들이 얼어 죽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해가 지나 또 겨울이다. 다시 길 위에 수많은 생명들이 살기 위해 죽을 힘들 다해 몸부림을 칠 것이다. 그 애처로움을 알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하나의 생명이라도 무사히 겨울을 잘 버텨내길 바란다는 응원뿐이다. 말도 안 되지만 이 작은 응원이 하늘에 닿든, 땅에 닿든, 어쨌든 돌고 돌아 조금이라고 길고양이들에게 힘이 되길 바라본다.


  그리고 더 이상 우리 아파트에 길고양이들로 인해 피해를 받는 사람도 줄었으면 한다. 그렇게 녀석들이 이미지가 조금씩 좋아져서 고양이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길, 그리고 더 나중엔 나처럼 고양이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좀 더 많아지길 함께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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