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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eIssue Nov 27. 2020

범백도, 비만세포종도 이겨낸 고양이랍니다.

  어느덧 11월도 막바지, 또 한 달 정도가 지나면 새해를 맞이한다. 매 번 신년이면 여기저기서 신년운세라는 글자들이 눈에 띈다. 재미 삼아 보는 거긴 하지만 이게 또 은근 궁금하기도 하고, 솔깃 솔깃한 얘기들도 적잖다. 

  금전운, 연애운, 학업운, 사업운, 자식운, 건강운까지. 가만 보면 걱정 없고 무탈하게 지내려면 여러 가지 운세들이 맞아떨어져야하니 싶기도 하다.


  고양이들에게도 이런 운세가 있을까? 있다면 다른 건 다 필요 없으니 건강운만큼은 우리 고양이들에게 그득그득했으면 좋겠다. 

  사실 뭐 우리 고양이들이 나가서 공부를 하는 것도,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니 학업운이나 사업운은 필요도 없을 테고, 사내로 태어났는데 뜻 한번 펼쳐보지도(?) 못하고 중성화를 당해버렸으니 연애운이나 자식운도 의미가 없을 테다. 세상 모든 사료랑 장난감을 사준지는 못해도 꼬박꼬박 밥 챙겨주고 틈틈이 놀아주는 집사도 있으니 금전운도 이만하면 됐다 싶다. 

  운세 중에는 건강운만 가득하면 될 것 같다. 특히 우리 둘째에게는 건강운이 많이 좀 붙었으면 좋겠다.




  

  둘째는 지금 가슴에 붕대를 두르고 있다. 지난주에 오른쪽 등 쪽에 멍울진 혹을 제거하는 간단한 수술을 하면서 본의 아니게 겨울옷 하나를 걸치고 있는 셈이다. 붕대만 두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동시에 오른쪽 앞발의 새끼발가락 옆에 내 손가락 마디 하나만큼 꿰맨 자국도 가지고 있다. 그 부위에도 불그스름한 혹 하나가 생겨서 지난주에 한꺼번에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

  사람 나이로 치면 10살, 묘르신인 우리 둘째가 또 한 번 전신마취와 몸에 대는 칼을 버텨냈다.



  10년 전. 둘째와 내가 서로의 존재도 모르던 시절, 그러니까 아내가 보호소에서 둘째를 데리고 오고 며칠 되지도 않아 생후 두세 달쯤 된 둘째는 범백을 앓았다고 한다. 

  바이러스성 장염이면서 백혈구 수가 확 줄어든다는 고양이 범백은 어린 고양이는 치사율이 90%나 되는 치명적인 병이다. 전염성도 강해서 둘째가 범백에 걸렸을 때, 같이 집에서 지내던 첫째는 부랴부랴 아내의 친구 집으로 급하게 옮기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단다.

  아내가 시름시름 앓고 있는 주먹만 한 둘째에게 먹기 싫어하는 약을 먹이고, 안아주고, 기도하고, 마음 졸이길 며칠. 둘째는 애틋한 엄마 마음을 알았던지 그 무시무시한 범백을 이겨냈다고 한다. 이게 우리 집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둘째의 범백 극복한 썰이다.


  또 작년 가을. 둘째는 꼬리 부분에 생긴 비만세포종을 제거하는 수술도 했었다. 

  개나 고양이에게 흔한 피부종양의 일종이라는 비만세포종. 문제는 이 비만세포종이 악성일 경우 몸 여기저기로 전이가 되고, 손 쓰기 힘든 부위에 닿으면 큰일이 날 수도 있단다.

  비만세포종 수술을 잘 마치고도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이 그렇게 길고 걱정스러웠다. 악성이면 어쩌나, 이미 어디로 전이라도 됐으면 어쩌나 하고 며칠이 불안 불안했었다. 다행히도 둘째 몸에 생긴 비만세포종은 악성은 아니었다. 

  그렇게 둘째는 몸에 상처 하나를 남기고 또 하나의 병을 이겨낸 썰을 남겼다.



  이번에 전신마취를 하면서 둘째는 많은 일을 했다. 치석이 많이 낀 이빨을 스케일링을 했고, 등과 발가락 옆에 생긴 혹을 제거했다. 마취에서 다 깨지 못해 비몽사몽인 둘째를 보고 아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가슴에도 찡한 뭔가가 맺혔다.

  다행히도 수의사 선생님은 이번에 제거한 혹이 단순한 지방종으로 보인다고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거한 혹의 조직검사를 맡겨놓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결과가 곧 나올 텐데, 분명 별 일 없을 거라고 믿고 있는 중이다.




  아직은 수술이나 큰 병치레 한 적이 없는 첫째나 막내에 비하면 둘째는 건강운이 없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둘째야 말고 건강운을 타고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 무섭다는 범백을 이겨내고 씩씩하게 살아왔고, 어쩌다 맞닥뜨린 비만세포종도 악성이 아니었고 훌훌 털어버렸으니 말이다.


  마취에서 덜 깨서 비틀비틀 걷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젠 둘째의 눈이 매우 똘똘하다. 니트조끼를 하나 걸친 것 같이 붕대를 가슴에 두르고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냥-' 하고 운다. 밥을 달란 건지, 심심하단 건지, 안아달란 건지, 언제 들어도 모를 저 '냥-' 하는 소리가 우렁차다.

  

  그거면 됐다. 

  건강운이 얼마나 있었냐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지금 내 옆에서 건강하게 잠들어 있었다는 게 중요한 거고, 앞으로 쭉 건강하게 내 곁에 있기만 하면 되는 거다. 그 무시무시한 병들도 다 이겨낸 씩씩한 둘째인데, 뭐가 무섭겠는가. 아마 백 년 만 년 내 옆에서 낭랑한 목소리로 '냥냥'거릴 거라고 굳게 믿는다.



  사고 좀 쳐도 괜찮으니까 앞으로 아프지만 말자, 둘째야! 첫째랑 막내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니들이 잘 모르나 본데 치료비가 생각보다 비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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