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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eIssue Dec 19. 2020

안 아파줘서 고마워

  고양이 갑상선 항진증.

  고양이의 갑상선 기능이 비정상적으로 활발해지면서 갑상선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는 질병이란다. 언뜻 보면 고양이들이 예전보다 활발하게 움직이고 밥도 잘 먹어서 쉬이 아픈 건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잘 먹는데도 몸무게가 줄고, 평소보다 예민해지고, 털이 빠지기도 하는 등 다양한 증상이 있다고 하며, 당장 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지만 건강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평생 약을 먹고살아야 한다고 한다.


  뭐 이런 무서운 병이 있는데, 중요한 건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난 우리 첫째가 이 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빠져있었다. 어쩌면 첫째가 남은 일생을 매일 약을 먹어가며 살지도 모른다는 우울에 빠져있었다.




  동물병원 차트 기록에 첫째의 19년 9월 몸무게는 6.8kg으로 적혀있었다.

  굳이 정확하게 남들에게 알려주긴 살짝 부끄럽긴 하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첫째는 다소 우람한 체격을 가진 고양이였다. 그래도 수의사 선생님 말로는 근육량이 많은 편이라고 했으니 마냥 뚱냥이도 아니었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랬던 우리 첫째의 몸무게가 1년 새, 6kg에 살짝 부족한 정도로 뚝뚝 떨어졌다. 1년 전 보다야 지금의 몸무게가 이래저래 탁월할지도 모르겠으나 나이 든 고양이의 몸무게가 쭉쭉 빠지는 게 아빠 입장에서는 걱정만 한 가득 가져다줄 뿐이었다. 빡쌔게 운동을 하고, 식단 조절하면서 다이어트를 하는 것도 아니고 매일 집에만 있는 고양이 몸무게가 10% 넘게 줄어드는 모습을 보며 전전긍긍하다가 결국은 병원에 데리고 갔다.



  말 못 하는 고양이가 동물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방법은 피를 뽑는 것뿐이었다. 싫다며 애 자두 옹 거리며 채혈을 마친 첫째의 검사 결과에 큰 이상소견은 없었다. 몸무게는 줄었지만, 검사를 통해 확인 이런저런 수치가 대부분 정상이었다. 다만, 갑상선 수치가 정상보다 높게 나왔었다. 1~4 사이의 수치가 정상인데, 첫째는 5가 넘는 수치가 나왔었다. 의사 선생님이 가볍게 갑상선 항진증 얘기를 꺼내기도 하셨지만, 크게 걱정할 수치는 아니라고 하셨기에 나도 그러려니 하고 넘겼었다.

  그리고는 의사 선생님은 줄어든 체중이 오히려 더 괜찮을 수도 있다고 하셨고, 계속 몸무게가 빠지는지만 확인하라셨다. 현재 몸무게가 유지된다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며 말이다. 그리고 몇 개월 후에 갑상선 수치만 다시 확인해 보자고 하셨다. 그렇게 별 탈 없이 마무리되는 듯했다.


  일주일 전, 동물병원에서 문자가 왔다. 시간이 좀 지났으니 갑상선 수치 검사를 다시 봐보자면서 말이다.

  첫째의 몸무게는 더 이상 줄지 않고 유지가 되었고, 그래서 별 걱정 없이 찾은 병원에서 나와 아내는 충격적인 결과를 받았다. 지난번에 5 정도였던 갑상선 수치가 8을 넘어선 것이었다. 정상수치를 한참 넘었다. 의사 선생님은 번거롭더라도 신중하게 일주일 후에 다시 한번만 확인하자고 하셨고, 그렇게 나와 아내는 어깨가 축 처져서는 집에 돌아왔다.


  그렇게 일주일, 아내와 나는 걱정만 한가득 안고 시간을 보냈다. 

  일주일 동안 아내는 첫째는 보면서 눈가가 붉어지기도 했다. 10년을 키운 아들이 아플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린지, 자기가 뭔가를 잘못해서 그런 것 같다며 후회하고 자책까지 했다. 괜찮을 거라고 위로했지만 아내는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인터넷에 나온 고양이 갑상선 항진증의 증세가 고스란히 첫째에게도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처음엔 아닐 거라고 믿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지쳐가는지 조금의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제 아침, 나와 아내와 첫째는 눈 띄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첫째는 싫다고 애옹애옹거리면서 일주일 만에 또 다시 채혈을 했다. 긴장이 되는지 아내와 난 말도 잘 안 하고 조용히 결과를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진료실 안에서 의사 선생님이 우리를 불렀다. 나도 모르게 크게 숨을 한 번 들이쉬었던 기억이 난다. 캐리어 안에 있는 첫째를 내가 안고 들어갈 테니, 아내에게 먼저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 선생님 말을 들으라고 했다. 그렇게 가만히 캐리어를 안아 들고 진료실을 향할 때, 동물병원 대기실까지 '정말요?'라는 아내의 쩌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밝고, 기쁜 목소리였다. 누가 들어도 안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목소리였다. 듣는 순간 마음이 놓이고 긴장이 풀리는 아내의 목소리였다.



  생각해보면 두 번째 검사 결과를 받을 때, 그러니까 첫째의 갑상선 수치가 8이 나왔을 때, 의사 선생님은 결과가 믿을만하지 않다고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거듭 말을 했었다. 다른 수치가 다 정상인데 갑상선 수치만 이렇게 높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검사 키트에 오류가 있을지 모른다는 말도 했었다. 아마 그땐 나와 아내 모두 멘털이 저 세상에 가 있어서 그런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었나 보다. 그래서 그렇게 둘이 일주일간 우울감에 사로잡혀 있었나 보다. 

  뭐 어쨌든 이제 상관없다. 이제 나에게 중요한 건 첫째와 고양이 갑상선 항진증이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돌아오는 차에서 아내는 내가 아까 동물병원에서 너무 크게 소리를 지른 거 아니냐고 내게 물었다. 결과를 듣자마자 환희에 차 '진짜요?'를 외치던 그때를 말하는 거였다. 웃으면서 쫌 컸다고 장난을 치는 내게 아내는 그래도 상관없다 했다. 첫째가 안 아프면 그걸로 된 거란다.

  어제 하루 종일 우리 집 분위기는 말 그대로 룰루랄라였다. 나와 아내, 둘 다 첫째가 안 아프다며, 건강하다며 흥얼흥얼거렸다. 첫째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아내는 몇 번이고 첫째를 안아 들고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을 했다.


  안 아파줘서 고마워.

  안 아파줘서 고마워.

  다행스러운 어제의 상황, 사랑하는 마음이 듬뿍 담긴 듣기 좋은 말이었다.

  안 아파줘서 고마워.



  그나저나, 우리 첫째는 어떻게 그렇게 살을 쭉쭉 뺏을까? 프로 다이어터(?)인가? 좋은 방법이 있으면 좀 배워보고 싶다. 첫째가 아픈 게 아니라니 이런 농담도 할 수 있고, 그저 지금이 좋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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