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다닐 때 교수님께서 해줬던 이야기가 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난 대부분의 가정에서 첫째 아이가 막 태어난 동생을 만나는 풍경은 이렇단다. 엄마는 산부인과나 조리원에 있고, 첫째는 아빠나 할머니 손을 잡고 며칠 만에 엄마를 보러 온다. 뭔지는 잘 몰라도 동생이 생겼다는 들뜸과 오랜만에 엄마를 본다는 기쁨에 첫째는 싱글싱글 엄마가 있는 방까지 온다. 방 문이 열리고 첫째 눈에는 작고 귀여운 아기를 꼭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들어온다. 평생 나만 볼 줄 알았던 엄마가 내가 아닌 다른 아이를, 그것도 세상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는 모습에 첫째는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는단다. 왜 동생이 생긴 스트레스가 첩이 들어온 스트레스와 맞먹는다고 하지 않던가.
첫째가 처음 동생을 만날 때는 이렇게 하란다. 둘째는 잠시 침대에 눕혀두고 엄마가 첫째를 맞으러 방 문까지 잠시 나오란다. 그리고는 '우리 첫째 잘 있었냐', '엄마는 첫째가 너무 보고 싶었다' 이런 다정한 말도 하고, 안아주고 또 손도 꼭 잡아주란다. 그다음에 저기 침대에 동생이 있다고 같이 동생 보러 가자고 말해주란다. 동생이 태어났어도 우리 엄마는 내 옆에서 내 손을 꼭 잡아주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야 어린아이가 동생이 생겼다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단다.
연구논문에 적힌 학술적인 내용은 아니었다. 그래도 너무 다 맞는 말 같아 아직도 기억이 난다. 교수님도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꼭 지키라고 했었고, 나도 혹시라도 둘째가 태어난다면 이렇게 해야겠다 했다.
때롱이가 올해 4월에 태어났다. 나에게만큼은 너무도 완벽한 아들이었다. 육아에 관해서는 들은 얘기든 책에서 읽은 얘기든 아니면 인터넷에서 본 얘기든 때롱이에게 도움이 된다면 다 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 많은 육아 관련 얘기 중에 위에 적어놓은 교수님의 얘기는 나에게 중요치 않았다. 때롱이는 첫째라 때롱이를 조심스럽게 만나게 해 줄 형이나 누나도 없었고, 또 때롱이게도 아직은 동생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 생각은 착각이었다. 때롱이에겐 형이 셋이나 있었다. 고양이 형들이 말이다.
막내는 내 껌딱지다. 아, 여기서 막내는 우리 셋째 고양이다. 앞으로 적을 첫째, 둘째, 막내는 다 우리 고양이들이다. 때롱이만 사람 아들(?)이다. 어차피 내겐 다 똑같은 아들들이다.
어쨌든 막내는 유독 날 잘 따랐다. 아내가 양치를 시키려고 하면 그렇게 싫다고 몸부림을 치는 녀석이 내가 하면 그저 얌전했다. 아내랑 내가 나란히 소파에 앉아있으면 꼭 내 옆에 총총 와서는 내 허벅지를 베고 누워 갸릉갸릉 애교를 피웠다. 아내가 종종 질투를 할 정도로 막내는 나만 따랐다.
또 둘째는 아내 껌딱지다. 나보다는 아내한테 찰싹 붙어있다. 첫째는 누구 껌딱지도 아니고 엄마도 아빠도 다 좋아하는 것 같다. 특별히 나나 아내 둘 중 누구랑 성격이 맞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자기들이 그냥 콕 찝어 누가 더 좋아서 그런 건진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 집엔 나만 졸졸 따라다니고, 내 사랑을 독차지하던 내 껌딱지가 있었다. 때롱이가 집에 올 때, 난 이 껌딱지를 더 신경 써야만 했다.
때롱이를 안고 걸어 다니고 있으면 막내가 다가와서 내 다리에 머리를 비빈다. 나도 봐달라고, 나랑 놀아달라는 뜻이다. 예전 같으면 당장이라도 안고 쓰다듬어줄 텐데 이젠 그러기가 힘들다. 두 손은 때롱이를 안고 있어야 하니까. 아쉬운 대로 발로 막내를 콕콕 건드리면 그 자리에서 발라당 드러누워서는 애교를 부린다. 사랑스럽기도 한데, 미안하기도 하다. 그 장난기 가득한 눈을 보고도 당장 놀아줄 수가 없다. 아직은 때롱이가 더 내 손길이 필요하니까.
지난 5개월 동안 난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때롱이를 안고 있어나, 아니면 때롱이 가까이서 때롱이를 돌보면서 지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게 이 당연함이 우리 막내에겐 당연하지 않았었나 보다.
때롱이를 안아주고 돌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막내랑 놀아주고 쓰다듬어주는 시간을 줄어갔다. 이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내 사랑을 독차지하다시피 했던 막내에게 이 변화들은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얼만 전, 한 번은 자고 있는 막내에게 아내가 다가가 배를 만져주고, 쓰다듬었다. 내가 할 때야 늘 아무렇지 않았지만 아내가 그러면 예전에는 새침한 표정을 하고는 자리를 피하곤 했다. 그럴 때면 아내는 '그래, 너는 아빠랑만 살아라!'하고는 질투 섞인 말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골골골 소리를 내면서 마냥 좋아만 하면서 계속 푹 자는 것이었다. 자기 손길도 마다하지 않는 막내를 보고 아내가 한 마디 했다.
"우리 막내가 사랑이 고팠구나."
이 한 마디에 괜히 가슴이 찡했다.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했구나 싶다.
사실 예상치 못했던 일들도 아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혹시라도 우리 고양이들이 서운해하진 않을까 걱정도 했었고, 그렇지 않게 신경도 많이 써야지 했었다. 그런데 막상 때롱이가 태어나니 그런 건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우는 때롱이 달래기도 바빴고, 틈만 나면 스르륵 감기는 눈 붙이기 급급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정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게 아니라, 너희들은 알아서 다 할 수 있잖아 하는 마음으로 조금은 여유롭게 생각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막내가 처음 집에 왔을 때, 둘째는 며칠을 밥도 안 먹고 토를 해댔다. 먹은 것도 없는데 어찌나 토를 했는지 나중에는 피도 섞여 나왔다. 병원에서 무슨 검사를 해도 특별한 점은 없었고, 수의사 샘들도 상황을 보니 막내가 집에 온 후 스트레스받아 그런 것 같다 말할 뿐이었다. 그 후 한동안 아내는 막내를 안지 않았다. 대신에 둘째 옆에만 붙어있었다. 그러고 나서야 얼마 후 둘째는 멀쩡히 건강해졌었다. 이런 경험을 있었으면서도 때롱이가 태어나서 어쩔 수 없었어라고 말하는 건 게으른 아빠의 핑계인 것 같다.
그저께 밤은 한참을 자고 있는데, 막내가 문을 열고 안방을 들어왔다. 막내는 문을 열 수 있어서 원래는 방 문을 잠그고 자는데, 그날 저녁은 깜빡했었나 보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안방에 들어온 막내가 냐옹냐옹 울자, 아내와 때롱이가 깰까 봐 얼른 안고 거실로 나왔다.
눈도 못 뜨고 비몽사몽 해서는 안방 문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러고는 다리에는 막내를 앉혀놓고 등을 쓰담 쓰담해줬다. 막내가 내는 골골골 소리가 크게도 들렸다. 새벽이라 들리는 다른 소리가 하나도 없어서 그렇게 크게 들렸는지, 아니면 막내의 골골 소리 자체가 컸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 였을지도.
막내에게 귀를 가까이 대지 않아도 그렇게 잘 들리는 골골 소리에 너무 미안하고 너무 고마웠다.
"아빠가 요즘 너한테 너무 신경을 못 써서 미안해."
"그래도 이렇게 아빠 좋아해 줘서 고마워."
깜깜한 거실 바닥에 앉아서 한참을 막내를 쓰다듬어주면서 말을 해줬다. 아빠 맘 다 알고 있어라고 말하는 듯 막내는 내 무릎에 턱을 괴고는 한참을 가만히 그렇게 있어줬다. 골골송도 멈추지 않고 계속 불러주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나, 이제 다시 들어가 자야 했다. 아침에 또 일어나야 하니까. 내가 안방에 들어가면 혹시나 따라 들어오려고 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막상 내가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나니까 막내는 조용히 소파로 가 자리를 잡았다. 정말 기특한 녀석이다. 마지막으로 딱 한 마디만 조용히 더 했다.
"동생만큼 너도 사랑해."
땡글땡글한 눈으로 날 가만히 보고만 있는데, 오묘한 그 표정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나도 다 알아 하는 건방진 표정 같기도 하고, 뭔가 좋아는 것 같은 그런 표정이었다.
주말에 하루는 작은 방에서 막내랑 자야겠다. 그리고 자면서 다시 한번 말해줘야겠다.
동생만큼 너도 사랑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