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연락하는 친구도 별로 없는 데다, 육아휴직까지 하고 집에만 있으니 누가 날 찾질 않는다. 내 폰은 이제 시계와 유튜브 재생기 역할만 하면 되니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찾아주는 곳이 여기 브런치였다.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냐며, 내 글이 보고 싶단다. 그것도 내가 제일 듣고 싶어 하는 작가님이란 호칭을 써가면서.
꾸준히 일기라도 쓰자, 쓰자, 속으로만 그러고는 매번 귀찮아서 손 놓고 있었다. 육아 이야기가 됐든, 고양이 이야기가 됐든 이제는 열심히 좀 해보자 다시 맘을 먹었다. 기분이라도 좋게 브런치가 이렇게 찾으니 못 이기는 척, 정신 승리를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하필 오랜만에 쓰는 일기에 쓸 일이 때롱이가 다친 일이다.
하...
때롱이는 요즘 뭔가를 짚고 일어나 돌아다니는데 한참 신이 나 있다. 아직 혼자서 서지는 못하는데 소파나 침대, 책장을 손으로 짚고 벌떡 벌떡 일어나서는 옆으로 잘도 걸어 다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 있고, 옆으로 뽀짝 뽀짝 이동하는 모양새가 영 불안 불안했는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았다. 서 있는 모습도 짱짱해 보이고 휘청거리다가 머리를 여기저기 콩하고 찧는 일도 며칠 동안은 없었다.
그래서 애 보는데 방심을 했나 보다. 애가 서 있거나 이동할 때 항상 가슴 쪽에 손을 대고 있으라던 아내의 와이프 말도 이젠 신경 쓰지 않았었다. 그 안일함에 오늘 때롱이가 크게 다쳤다.
왜 운전할 때도 정작 쌩초보 시절에는 사고가 안 나다가도, 어느 정도 운전에 자신감이 붙었을 때 다 순간 방심이나 실수로 사고가 난다고 하던데 내가 딱 그 꼴이었다.
하루새 때롱이는 '사랑해요~'라고 말하면 두 손을 번쩍 머리 위로 들었다. 사실 팔 모양 하트 모양도 아니다. 그냥 소소한 개인기가 늘었다는 것만으로 그저 황홀한 날이었다.
분명 내 앞에서 테이블을 짚고 빵긋빵긋 웃던 때롱이가 순간 앞으로 뒤집히면서 넘어졌다. 너무 순식간이라 어떻게 다쳤는지도 안 보였다. 다만, 때롱이가 우는 소리가 심상치는 않았다. 울음소리만 들어도 엄살인지, 정말 아픈 건지 알 수 있었는데,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에 나도 벌벌 떨렸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왼쪽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울던 때롱이 고개를 돌려보니 턱 쪽으로 피가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피가 철철 흐르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피를 본 순간 얼굴이 일그러지는 게 느껴질 정도로 표정관리가 안됐었다.
우는 때롱이를 달래는 내내, 내 얼굴을 쪼그라들고 온갖 후회와 잡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울음을 그치고 조금 진정이 됐을 땐 바로 병원을 갔다. 다시 웃기도 하고, 입안을 이리저리 살펴도 상처도 없어 보여 그냥 있을까 하다가도 아무래도 의사 선생님을 보고 별 이상 없다는 말을 들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피 좀 난 것 가지고 유난이 다할지 모르나 때롱이가 태어나서 피를 흘린 적은 처음이었다. 거기에 이라도 다쳤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도 컸어서 병원을 가는 게 내 정신건강에 좋았다. 어쨌든 11개월 때롱이 인생에 가장 크게 다친 건 맞았다. 이 못난 아빠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고 매번 다니던 아동병원으로 갔다가, 윗니와 맞닿는 잇몸 부분에 피가 맺혀있는 것을 확인하고 소아치과를 가보라는 의사샘을 말만 듣고 나왔다. 가보라던 바로 건너편 치과는 하필 문이 닫았어서 부랴부랴 가까운 치과를 찾아가서야 괜찮다는 말을 들었다.
괜찮다는 그 한마디 듣는 1시간가량이 얼마나 정신이 없었던지. 집에 와서야 긴장이 좀 풀렸다.
하루 종일 안 감은 머리에, 긴장한 탓에 난 땀에 젖은 앞머리. 급한 마음에 모자도 안 쓰고 나가는 바람에 내 꼴이 영 아니다는 것은 집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그 찌질해 보이는 꼴에 아이까지 다치게 했으니 얼마나 무책임한 아빠로 보였을까 하고 허탈했다.
병원을 다녀온 후 때롱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잘 놀았다. 평소처럼 웃고, 여기저기 씩씩하게 기어 다녔다. 크게 안 다친 게 그저 고마웠다.
나름 큰 일을 치렀다고 피곤했는지 좀 일찍 잠들었는데, 자다가 한 번은 서럽게도 엉엉 울면서 깼다. 괜히 나 혼자서 오늘 다쳤던 일이 생각나서 저러나, 괜찮다 해도 다친 부분이 아직은 아픈가 하는 생각이 들어 미안했다. 다시 쌔근쌔근 잠든 때롱이 볼에 뽀뽀 한 번 해주고는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몇 번을 속삭였다.
치과에서 집에 오는 길에 알아먹지도 못하는 때롱이에게 다시는 이런 데 오지 말자고 몇 번을 말했다. 아휴...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지금껏 겪어보지 못했던 긴장감과 쫄림을 맛봤는데, 다시 경험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행스럽게 마무리가 되고 이마도 깨져보고, 손도 찢어지고, 교통사고까지 났었던 나를 어떻게 키웠냐고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는 원래 다 그러면서 크는 거란다. 그러면서 때롱이도 크고 나도 큰단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크고 싶진 않다. 그냥 기분 좋은 경험만 하면서 컸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헐렁한 마음으로 아들 볼 생각하지 말자, 아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