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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유 Dec 25. 2023

팥죽 단지에 생쥐

유년의 서랍을 열다


방바닥 한가운데 놓여 있는 닭다리! 분명 방을 이렇게 쑥대밭으로 만든 정체를 바로 알아챘다. 

"이런, 톰썸 녀석!" 


기숙사는 공사를 하느라 잔해더미로 엉망이었다. 한참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부스럭' 

흩어진 나무토막과 흙먼지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민 건 다름 아닌 생쥐였다. 나를 한 번 쓱 쳐다보고는 제 갈 길을 가는 모습이 얼마나 당당한지! 그 모습에 오히려 내가 얼이 빠질 정도였다.


이후로도 이 생쥐는 내 방을 팥죽 단지 다니듯 공공연하게 드나들었다. 그래서 베아트릭스 포터의 '못된 생쥐 두 마리 이야기'에서 인형에 집에 무단 침입해 한밑천 장만하는 주인공의 이름을 따 그를 '톰썸'이라 명명해 두었다. 라면이며 과자며 톰썸이 특별히 가리는 음식은 없었다. 때론 그도 먹이 획득에 실패할 때도 있었는데, 책상 위 전선 구멍에 어설프게 끼어 있는 초코파이가 그 증거였다. 아주 쌤통이다, 톰썸!


그런데 이놈이 오늘 기숙사 방에 또? 분명 먹다 남은 치킨을 사물함에 넣어 두었는데, 설마 제 발로 살아서 걸어 나올 리는 만무하고... 머릿속에 쥐의 동선이 그려졌다. 궁여지책으로 살짝 떠 있는 방문 틈을 두꺼운 사전으로 막아놨는데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는지. 인도에선 경찰이 압수한 대마초 500킬로그램을 쥐들이 다 먹어치웠다는데, 하물며 사전인들. 쥐 잡으려다 쌀독 깬 격이었다.


이듬해 학생 기숙사에서 탈출한 나는 학기 첫날 엄마와 함께 관사에서 잠을 청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죽은 새끼 쥐 몇 마리가 끈끈이에 눌러 붙어 있는 게 아닌가! 

"그냥 놔두면 너 매일 밤 잠 못 잘까봐..."

엄마는 혹여나 딸이 깰까 봐 밤새 숨죽이며 쥐를 잡으셨단다. 고마운 마음과 새끼 쥐를 향한 측은한 마음이 교차했다.


세월 따라 학생도 변하고, 선생님도 변하지만 여전히 시설 좋은 학교에도 한 번씩 쥐가 출몰한다는 사실! 내가 어릴 적에도 수업 중 등장한 톰썸 때문에 우린 책상 위로 피신을 하며 난리, 또 선생님은 쥐를 잡겠다고 빗자루를 들고 난리. 우당탕탕 엉망진창 수업과 그 안에 웃음 섞인 비명소리. 졸린 오후의 나른함을 단숨에 날려준, 생쥐 한 마리로부터 시작된 일탈, 그 유쾌함이 때론 그립다.


그러나 만약 우리 교실에 쥐가 나타난다면? 나도 빗자루를 들 테다. 이미 충분히 단련된 나도 그날 밤의 엄마처럼 꼬리 달린 불청객으로부터 우리 애들을 지켜내야 하니까.


베아트릭스 포터의 The Tale of Two Bad M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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