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고 돈을 찾는다.
은행에서 일을 하다 보면 돈에서 파생되는 가족 간의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아들의 대학 등록금이라며 차곡차곡 돈을 모으는 아버지를 보면 부모의 책임감을 느낄 수 있고, 단돈 몇 백만 원을 상속받기 위해 법정 다툼도 불사하는 형제지간을 보면 가족이라는 단어에 무상함이 들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상황에서도 단연 기억에 남는 것은 후자와 같은 부정적인 상황들이다. 막장 드라마가 시청률이 높은 것처럼 자극적이고 심각해 보이는 일일수록 귀가 기울여지는 법이다. 어쨌거나 은행에 들어온 후 주변에서 단란한 가정을 찾는 것이 더욱 힘들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여러 가정사를 직간접적으로 보고 들었지만, 그중에서도 몇몇 기억에 남는 일들이 있다. 깊게 파인 주름만큼이나 나이를 드신 한 할머니는 아들이 할머니 명의로 다단계 사업을 해 큰 빚을 지게 되었다. 그간 모아둔 자산조차 없어 어찌할 방도가 없다며 서러움이 가득 담긴 한숨을 내뱉으시지만 아들에 대한 원망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들은 이런 할머니의 속도 모르고 연락마저 두절된 상태였다. 노령연금으로 간간히 생활하시는 한 할아버지가 계셨다. 매월 25일쯤이 되면 연금을 수령하기 위해 은행에 방문하신다. 매달 만나는 분인 만큼 지점 직원 모두 일면식은 있는 분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할아버지가 연금을 수령하러 오지 않으셨다. 몇 달이 지나서야 다시 은행에 방문해 주셨는데, 할아버지 말씀으로 아들이 할아버지의 통장과 카드를 가지고 연금이 들어오는 날이면 돈을 자신에게 이체를 한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통장과 카드 비밀번호를 변경하셨고 우리도 약간의 안심을 했다. 그러자 며칠이 지나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셨는데 비밀번호를 까먹으셨다. (주절주절) 전화로 비밀번호를 바꿔달라.'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비밀번호 변경은 지점에 예금주가 방문을 해야만 바꿀 수 있거니와 할아버지의 속사정을 알고 있는 우리는 더욱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
가까우면서도 먼 것이 가족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