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품종으로 빚은 다양한 지역의 와인 맛보기
지금 마시고 있는 와인에 대해 알고 싶을 때, 그 해답의 8할은 라벨에 있다. 어떤 품종의 포도로 만든 와인인지도 물론 라벨에 적혀 있다. 그런데 간혹 품종이 적혀 있지 않은 와인도 있다. 혹시 실수냐고? 설마 그럴 리가.
그렇다면 ‘적는다’와 ‘적지 않는다’ 사이에 모종의 원칙이 있을 터인데, 그 원칙이란 무진장 단순하다. 섞어 만드느냐, 그냥 만드느냐. 하지만 이건 신세계 와인의 경우다. 전통적으로 유럽 와인은 품종을 적지 않는다.
지구 상에는 다채롭기 그지없는 품종의 포도가 존재하며, 그중 와인을 만드는 품종도 사뭇 다채롭다. 어떤 품종은 그 품종으로만 와인을 만들어도 괜찮고, 어떤 품종은 다른 품종과 섞여야 장기를 발휘한다. 또 섞어도 어떤 품종을 많이 넣고 적게 넣느냐에 따라 맛이 사뭇 다르다.
그러다 보니 자꾸 더 좋은 맛을 내기 위해 이 포도, 저 포도 섞어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맛과 향의 포도가 섞인 와인이 탄생하는데, 바로 이런 와인에는 품종을 명시하지 않는 게 오랜 원칙이다.
와인이랑 웬만큼 친하려고 마음먹었다면, 한 가지 품종으로 빚은 다양한 지역의 와인을 맛보기를 권한다. 포도 맛을 문자가 아닌 혀로 익히고 음미하는 시간은 제법 즐거우니까.
와인 매장에 가서 둘러보면 눈에 제일 많이 들어오는 품종이 카베르네 소비뇽과 샤르도네다. 각각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중 가장 많이 재배되는 대표 품종이기 때문이다. 이 두 품종은 프랑스, 칠레, 미국, 호주 등을 중심으로 단일 품종 와인을 만드는 데 쓰인다.
한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다 보면 맛이 다 비슷비슷할 것 같지만 같은 포도라도 어디서, 어떻게 자랐느냐에 따라 맛이 정말 다르다. 한 가지 품종만으로 와인을 만드는 데 도가 튼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와인을 보면 더 쉽다. 부르고뉴는 레드 와인엔 피노 누아, 화이트 와인엔 샤르도네만 주로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와인 전문가들이 와인 초보자들에게 일단 부르고뉴 와인부터 이것저것 마셔보라고 충고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분명 같은 품종을 심는데도 북쪽에서 자랐느냐, 남쪽에서 자랐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다른 걸 아무리 혀가 무디더라도 알 수 있다는 거다. 석회질이 섞인 흙에서 자란 포도로 와인을 만들면 맛이 한결 상큼하면서도 가볍고, 점토질 흙에서 자란 포도로 와인을 만들면 걸쭉하면서 향이 풍부하다.
이렇게 지역에 따라 흙 종류가 많이 달라서 와인 맛이 천차만별인 것이다. 결국 포도가 자란 밭의 특성이 고스란히 그 와인에 드러난다는 것을 부르고뉴 와인만큼 확실하게 보여주는 와인도 없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100% 단일 품종 와인이라고 표시된 다른 나라의 와인도 부르고뉴 와인처럼 100% 단일 품종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는 것이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신세계 와인들은 보통 한 가지 품종을 75% 이상 사용하면 소비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라벨에 그 품종을 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파 밸리의 카베르네 소비뇽’이라고 적혀 있다면 카베르네 소비뇽 75% 이상을 사용해 그 와인을 만들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75% 이상이더라도 그 포도 품종 고유의 맛이 많이 드러나기 때문에 초보자가 그 품종의 맛을 익히는 데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포도 종류별 유명 산지를 알아두고 다 찾아서 맛볼까요?
1.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 프랑스 보르도, 미국 캘리포니아, 워싱턴, 칠레
2. 메를로(Merlot) - 프랑스 보르도, 미국 캘리포니아, 칠레
3. 시라즈(Shiraz) - 호주, 프랑스 론
4. 피노 누아(Pinot Noir) - 프랑스 부르고뉴, 미국 캘리포니아, 오리건
5. 샤르도네(Chardonnay) - 프랑스 부르고뉴, 미국 캘리포니아, 호주, 칠레
6.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 프랑스 보르도, 상세르, 미국 캘리포니아, 뉴질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