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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by 나쵸킬러

냉철한 완벽주의자인 에리카 코후트는 빈 음악원의 명망 높은 피아노 교수이다. 중년이지만 강압적인 어머니와 지내며 미혼 생활을 하고 있다. 젊은 공대생인 클레머는 에리카에게 매혹되어 적극적인 대시를 하지만 에리나는 모멸감을 주며 그를 밀어낸다. 한편으론 자신의 다른 제자인 안나에게 호의를 주는 클레머에게 질투를 느끼며 혼란스러워한다. 집요하게 구애하던 클레머는 에리카의 거부에도 키스를 하게 되는데, 이후 에리카는 그에게 자신이 가져온 가학 피학적인 페티시를 드러낸다. 이에 클레머는 충격을 받고 에리타의 성적 욕망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모질게 떠난다. 에리카는 처절하게 붙잡지만 그의 마음이 떠난 것을 느끼고, 연주회 시작이 임박할 즘 칼을 꺼내 자신을 찌른다.


클레머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왔을 때, 에리카는 침대 아래에 숨겨두던 자신의 성적 도구들을 밖으로 드러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장면 속의 에리카가 어린 소녀 같다고 느꼈다. 바닥에서 도구를 꺼내고 상대방을 올려다보는 에리카와 그것을 서서 내려보는 클레머의 수직적인 위치 관계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그 장면은 표면을 두꺼운 벽으로 둘러싸왔지만 그 속에서 충돌하던 에리카의 불완전한 내면, 응어리가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이때 에리카는 명령을 내리고 다그치던 평상시 피아노 앞에서의 강한 모습은 사라지고, 영락없이 작은 존재가 되어 사랑과 성적 욕망 앞에서 부푼 심장 고동 소리를 들려주었다. 특히나 발터를 붙잡을 때 에리카의 콤플렉스는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그간 결핍되어온 미성숙한 속내가 벗겨진다. 주인공을 둘러싼 억압과 광기는 섬세하게 또 그래서 잔혹하게 비친다.


<피아니스트>는 프로스트와 라캉의 정신분석학 이론을 기반으로 더욱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보이는 존재로써, 평가받는 대상으로 작용되어왔다. 그러나 영화는 에리카의 시선을 따라 피아노 치는 학생들을 내려다본다든지, 포르노를 관음 하며 ‘보는 자’로 존재하게 된다. 또한 억압하는 어머니는 에리카의 초자아 역할을 수행한다. 어머니는 여성의 육체에 대한 사회적인 억압과 감시를 반영하며 에리카의 모든 욕망을 철저히 봉쇄 시킨다. 그는 연애가 집안을 매춘굴로 만든다고 주장하고, 화장을 철저히 금지하며 그의 삶을 갉아먹는다. 표면적으론 피아노에 집중하라는 이유로 가사를 면제 시킨다든지 부부 침대에서 함께 나란히 잠을 자는 모습은 두 모녀에게 에리카는 일종의 상징적 남성적 역할이 부여됨을 알 수 있다.


영화는 폭력적인 장면을 통해 관객에게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에리카가 학생인 안나를 깨진 컵으로 상처를 내는 장면이 있다. 원작에 따르면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던 젊은 시절에 에리카가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남들처럼 미니스커트를 입지 못하고 어머니의 신념을 받아들여 자기 자신을 억압했다는 과거가 있었다. 비교적 과거 회상이 편리한 소설은 서술을 통해 안나에 대한 공격은 클레머에 대한 질투심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을 만끽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공격성이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영화는 원작과 달리 세부적인 성장 배경을 설명하지 않고 클레머와의 관계에 집중했다. 정서적으로 준비가 되지 않은 관객은 충분한 암시 없이 드러난 폭력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게 된다. 한편으로 거리두기 기법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그러한 충격에서 벗어나게끔 한다. 하네케 감독은 관객의 지적 능력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친절한 설명이나 안락한 이음새 없이 분절된 영상들은 관객을 불편하게 하며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거리두기 기법은 촬영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에리카가 화장실에서 자해하는 장면은 몰입이 쉬운 클로즈업 대신 거리감을 두는 롱 쇼트로 고정된 카메라를 사용했다. 또한 관객이 한참 몰입하는 와중에 진행 상황과 상관없는 몽타주를 끼워 넣는 것도 몰입을 방해하는 거리두기 방식이다. 에리카와 어머니가 싸우는 첫 시퀀스 후에 피아노를 가르치는 에리카의 모습에 검은 바탕의 영화 타이틀이 짧은 쇼트로 분절되어 들어가는 것도 그러하다. 편집될 때마다 가르치는 학생이 바뀌어 시간을 축약하는 효과를 가지면서 긴장감을 가져다주고, 보고 있는 영상이 영화적 허구라는 것을 인지시킨다.


영화는 주인공의 내면을 내레이션이나 환상, 기억 등을 표현한 영상이나 과거로 돌아가는 플래시백 효과를 사용하지 않았다. 심리 묘사를 자제하면서도 전체적으로 객관적 시점에서 인물의 행동을 보여준다. 연기는 관객을 흡입 시키는 중요한 요소였다. 에리카 역의 이자벨 웨페르의 절제된 연기는 미묘하고 이중적인 감정을 표현해 주었다. 클레머 역을 맡은 브누아 마지멜의 상냥한 미소와 냉소의 교차는 영화를 더욱이 매력적이게 만들었다.


이러한 혼합적인 연출 요소 덕분에 훌륭한 원작으로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속설을 깨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원작인<피아노 치는 여자>을 성공적으로 영화화했다. 영화는 제54회 칸 영화제에서 대상과 남/여 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칸영화제에서 주요 부분에서 3관왕을 한 것은 이례적인 경우이다. 이 영화의 여파로 칸 영화제는 한 영화가 두 부분 이상의 상을 수상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칙이 세워졌을 정도로 영향력이 큰 영화였다.<피아니스트는> 사랑에 대해 평범한 멜로의 언어로 풀어내지 않는다. 애정을 이야기하지만 감상자는 긴장감을 놓칠 수 없다. 이런 독특한 심리 표현을 시청각적으로 해내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매체와 장르의 경계선이 붕괴되는 요즘 시점에서 영화 매체가 가지는 정체성의 건재함을 보여주는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피아니스트>는 에리카의 내면을 면밀히 따라가며 여성의 자기 인식을 환기시켰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욕망하지 않는 캐릭터는 죽어있는 것과 같으며, 매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여성 캐릭터는 피동적인 트로피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고집한다. 히어로가 되었든, 뒤틀리고 왜곡된 악당이 되었든 에리카 같은 욕망하는 여성 캐릭터를 더욱 풍성하게 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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