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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Jul 24. 2023

누구에게든 찬란한 역사가 있다

공연에서 만난 사람들

 지역 문화재단 등에서 운영하는 거리공연자가 되면 가끔 문화소외공간으로 파견 나가는 경우가 있다. 이날은 작은 요양원이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안내를 받아 들어간 건물 안은 창백했고, 파리한 약품 내음이 났다. 어르신들 방을 지나쳐 걸었다. 방은 약간 어두웠다. 입원실 느낌이었다.  안에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옅게 들렸다.

 

 거실에서 공연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담당자님과 함께 앰프를 세팅했다. 벽에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이 가득 붙어있었다. 한쪽엔 색종이로 서툴게 무언가를 접은 작품도 전시되어 있었다. 떨리는 글씨로 각자의 이름이 적혀있다.


 공연 15분 전, 어르신들이 들어오셨다. 다들 휠체어를 타고 계셔서 객석 의자가 따로 필요 없다. 링겔을 꽂은 분도 계시고, 커다란 기저귀를 하신 분도 계셨다. 머리는 남녀할 것 없이 다들 바짝 깎으셨다. 다들 얼굴이 흰비둘기처럼 하얗다.


 공연을 시작했다. 이번 연주곡들은 오래된 트로트이다. 원래 흥 많은 어르신들은 이럴 때 일어나 춤도 추시지만, 여기에서는 힘차게 박수를 치실 수 있는 분도 적다. 이렇게나 해금 소리가 큰데 큰바위얼굴 같이 주름진 머리를 기울여 조는 분도 계시다. 그래도 몇 분이 음정과 박자는 안 맞지만 열심히 노래를 따라불러 주셨다. 어유 여기 멋있는 가수님이 계신다고 추켜올려드렸다. 저쪽에 보니 한 분이 힘없는 손짓으로 허우적거리신다. 어머 여기 음악 선생님도 계신다고, 지휘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어떻게든 호응을 끌어내려 한 말이었다.


 연주를 무사히 마쳤다. 모두에게 인사를 드린 후 앰프를 정리했다. 저쪽 끝에서 나를 애타게 부르시는 소리가 들린다. 아까 손을 휘저으시던 분이다. 다가가 연주 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는 순간, 그분이 눈물 흘리시는 것을 보았다. 차갑게 주름진 손으로 내 손을 몇 번이고 쓰다듬으며 어눌하게 말씀하셨다.      


젊은 날의 나를 알아주어 고마워요.


 나중에 요양보호사 선생님께 들었다. 그분은 젊은 시절 오사카에서 음악 선생님을 하셨단다. 그 시절 선생님까지 하실 정도이니 엄청난 엘리트셨던 것이다. 그분은 내 작은 연주를 들으며 젊은 날 수많은 학생들 앞에서 지휘하던 찬란한 때를 상상하셨을까. 순간 마음에 짜르르, 윤슬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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