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한 Jul 21. 2023

한복 입고 대중교통을 타면 생기는 일

집에서부터 한복을 입고 나섭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가용이 없어서 대중교통으로 전국을 다니며 공연했다. 혹 음향 장비가 필요한 날이면 작은 앰프를 캐리어에 넣고 낑낑거리며 지하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전통한복, 어깨에는 해금, 왼쪽 어깨엔 에코백, 왼쪽 손엔 치맛자락, 오른쪽 손엔 무거운 앰프. 구경하기 딱 좋은 모양새긴 하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 나는 아주아주 무거운 물질이 되어 모두의 시선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어디에서든 시선이 느껴진다. 그런 때에는 쳐다보는 사람을 나도 웃으며 쳐다보면 된다. 그러면 상대방은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거둔다. 가끔은 눈이 마주친 김에 내게 말을 걸기도 한다. 아유 이뻐라. 한복 어디서 샀어요? 등에 진 건 뭐예요?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리고 계단을 오를 때, 의외로 많은 분이 앰프를 들어주신다. 아이 다정한 한국 사람들. 감사하다는 말씀을 계단 수만큼 한다. 그리곤 기도한다. 오늘 선행하신 저분의 길은 힘든 계단 없이 평탄하시기를. 문득 기분이 맑아진다.


 가끔 울적한 날에는 시선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동물원 유리에 갇힌 기분이다. 수많은 시선이 치마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걸음이 더욱 무겁다. 그런 날에는 화장실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이상하다는 눈으로 보셔도 실은 예뻐서 그러신 거겠지. 한국 사람들은 굳은 표정이 기본이니까. 난 예뻐, 난 최고야! 마음을 단단히 한다.


 공연장 담당자님들도 놀라신다. 현장에서 옷을 갈아입을 줄 알았는데 집에서부터 입고 오시는군요. 그러면 집에 옷이 없어서 그렇다며 농담한다. 실은 속치마 부피가 너무 커서 입고 오는 게 낫거든요. 남들 눈에 띄는 걸 정말 좋아하지 않지만요. 못 믿으시겠지만 진짜예요.


 그날도 지하철을 탔다. 자리가 없어 일반석 앞에 서 있었는데 마침 할머님들이 세 분 앉아 계셨다. 내가 타는 순간 그분들의 눈이 커지며 위아래로 어마어마하게 나를 훑었다. 보통은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보시지는 않는데. 민망해서 다른 데로 갈까 하다가 눈이 마주쳤다. 어색하게 웃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할머님들은 “어머어머 이런 거 어디에서 맞췄어? 인형 같고 예쁘네~”하며 칭찬하셨다. 갑자기 맨 왼쪽 분이 “그런데 임신한 거 아니야?” 하셨다. 아아니 츠녀한테 무슨 말씀이세요. 엄청 당황했지만 속치마를 여러 겹 입어서 빵실해 보인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마자 이분들은 일제히 내 긴 치마를 들추고 속치마를 꺼내 보셨다. “어머어머 정말 많이도 입었네. 덥겠다.” “어머 정말 그러네. 재질이 뭐야?” 끼야악. 정말 놀랐지만 이분들의 눈빛에는 악의가 아닌 반가움이랄까 친근감이 가득 차 있었다. 흑흑 네. 오늘은 할머님들의 손녀 할게요. 요즘은 여름 속치마는 맨 안쪽이 인견으로 나와서 낫긴 하지만 그래도 덥긴 하다며 맞장구를 쳐 드렸다. “어머나 그렇구나 신기하네!! 옛날에는 이런 게 없어가지구~ 엄머머, 이거 봐. 댕기도 빨간 걸로 드리고 아유 곱다야~ 댕기를 다 보네. 이게 얼마만이야~” 그 옛날 소녀님 세 분은 천진하게 웃으셨다. 내친김에 신고 있던 버선이랑 꽃신까지 죄다 자랑을 하고 나니 소녀님들의 목적지가 가까워졌다. “아유, 오랜만에 이렇게 이쁜 모습을 보니까 내 마음이 다 밝아지네. 여기 앉고, 조심히 가요. 응.” 어휴, 폭풍이 지나간 것 같다.   

역시 한복을 입어서 그런지 주로 할머님들의 사랑을 담뿍 받는다.

 이렇게 한복을 입고 다니면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과 대화하게 된다. 내향형이라 아직은 많이 어색하지만, 한국인이 한복 입겠다는데 뭐 어때. 오늘도 나는 집에서부터 당당히 한복을 입고 집을 나선다.      

작가의 이전글 구걸하는 게 아니에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