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거리공연자
여름이 되면 공연 며칠 전부터 불안하다. 부디, 무사히 공연할 수 있기를.
하필 그날은 팬분들이 많이 오시기로 한 날이었다. 전날까지도 가겠다는 디엠이 왔다. 드디어 당일, 이날 공연은 12시 30분에 시작하는 광화문광장이다. 7시 반부터 눈이 떠진다. 예보에는 비가 온다고 했지만 다행히 비가 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이 공연은 취소되면 8시 즈음에는 공지가 올라온다. 아침 30분을 째로 서성거린다. 책을 읽었다 해금줄을 늘렸다 하지만 온 신경은 휴대폰에 가 있다. 마음의 준비를 해 둔다.
8시. 공지가 올라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공연은 예정대로 진행되는 것이다. 다행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금 더 기다려본다.
8시 45분. 스테프에게서 문자가 왔다. 안녕하세요 은한님 거리공연 진행스테프입니다. 오늘 광화문광장 사계정원에서 공연 있으십니다. 정확한 장소 안내 및 문의사항 있으실 경우 이 번호로 연락주세요. 아싸! 팬분들에게 진행한다고 연락을 돌려야겠다.
그러나 8시 55분. 공지가 올라왔다. 금일 모든 공연은 우천으로 취소되었습니다. 아니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바로 스텝에게서 문자가 왔다. 은한 님, 취소됐다네요ㅠㅠ
황망한 눈으로 창을 바라보니 날씨는 여전히 흐리기만 하고, 내 마음에만 장대비가 내린다. 축축해진 얼굴로 연락을 돌린다. 오늘 공연이 우천취소되었대요. 다음에 만나요. 죄송합니다. 마음을 놓았던 것만큼 무기력해진다. 그나마 위안이 될 것이 있다면 아직 머리를 감지 않았다는 것 정도일까. 거실 바닥에 늘어져 멍하니 몇 시간을 흘린다.
이 공연은 계약서에서부터 미리 명시해 놓는다. 공연 3시간 전에 우천 등으로 취소하면 공연비는 없다고. 그러나 공연 신청은 한 달 전이다. 공연자는 일정을 빼놓았는데 갑자기 그날의 공연이, 공연비가 사라지는 것이다. 차라리 공연 시간에 비가 오면 덜 억울하다. 이날은 결국 흐림을 지나 종일 쨍쨍했다. 기상청의 예보가 틀린 것이다.
어떻게든 기운을 내어 집 밖에 나간다. 얄밉게 싱그러운 햇살 속 양산을 쓰고 걸으면서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하루 전에도 맞히지 못하는 날씨를 한 달 전에 예상하지 못한 것? 그건 말이 안 된다. 그럼 공연 대행사의 잘못인가? 이분들도 여러모로 곤란할 것이다. 비 예보가 있는데 공연하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니까. 그러면 기상청의 잘못인가? 우리나라는 날씨를 맞히기가 정말 힘들다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기상청 체육대회 날에 비가 온다고 할 정도니까. 그러면 다시 화살은 내게로 온다. 내가 이렇게 날씨를 예측하기 힘든 나라에 태어난 것이 잘못일까. 날씨와 상관없는 공연에 초대되지 못하는 적은 인지도? 결국 나는 오늘도 햇살에 말라가는 건포도같이 쪼그라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