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을 쳐다도 보기 싫을 때
가끔, 아니 솔직히 얘기하면 자주 이런 날이 온다. 연습해야 하는데 너무너무 하기 싫은 날. 이게 좀 심해지면 벽에 기대어 있는 해금들과 눈 마주치기도 싫어져 고개를 돌린다. 괜히 휴대폰을 열어 관심도 없는 것들을 보며 시간을 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 야 은한아 정신 차려. 기운 내. 연습을 해야 될 거 아냐. 문득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는 해금이 싫어졌는가. 아니 그건 아니다. 그냥 해금을 드는 버거울 뿐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시작’이 힘들다. 수험생에게 책 첫 장이 가장 무겁듯.
다양한 시도를 해 봤다. 아예 해금을 놓고 동네 한 바퀴를 훌쩍 돈다거나, 자책을 하거나, 관련 없는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연주 영상을 보거나, 자거나. 하지만 가장 효과가 좋은 방법은,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일단 해금을 드는 것이다. 그러면, 자동으로 활에 송진을 바르고 조율하게 된다. 그래도 해금이 너무 무거워 다 때려치우고 싶으면,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딱 한 곡만 해보자.
한 곡을 연주하고 나면 소리에 기분이 좀 풀린다. 그럴 때 잽싸게 셀프 칭찬을 해 준다. 야 은한 너 쫌 한다. 어우 해금 소리 오늘따라 더 좋네. 대박이다 워후 이럴 때 연습하면 두세 배의 효율이 나는 거라고!! 넌 잘될 거야!! 그러면 희한하게 기분이 나아져서 더 연습하게 된다.
이렇게 오늘도 나는 나를 길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