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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Aug 01. 2023

거리공연 하다보면 이런 일도 생겨요!

공연에서 만난 사람들

 지금은 팬카페 <은한철도 999>에 일정을 올리지만 예전에는 모두가 볼 수 있는 인스타그램에 일정을 올리곤 했다. 일정은 듬성듬성했고, 보고 찾아오는 이도 거의 없었다.


 청계천 광교에서 연주한 날이었다. 인적이 그리 많지 앰프도 없이 커다란  위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은  새처럼 잠시 보다가 떠나고, 이른 오후 선선한 가을바람과 청계천 물소리만 오래 곁에 있었다. 마음을 비우고 눈을 감고 가을에 어울리는 곡들을 연주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즐기는 풍류다.

 문득 눈을 떴다. 중년 남성과 그 아들인 듯한 분이 서서 연주를 듣고 있었다. 통행에 방해되지 않게 약간 멀리에서, 그러나 서로 대화도 하지 않고 매우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해금 소리가 두 분의 귀에 오롯이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낄 정도였다. 순간 우리는 스치는 사람들 속, 붙박이가 되어 우리만의 음악회를 열었다.


 연주를 마쳤다. 두 분이 다가와 작은 선물을 건넸다. 감사한 마음을 다 담지 못했다고 하셨다. 아니 내가 감사해야 하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아드님이 말을 이어갔다. 바이올린을 하는 학생인데, 한동안 깊은 슬럼프와 우울감으로 바이올린을 보기도 힘들었고, 결국 방 밖으로 나가는 것도 두려워졌다고 한다. 그러다 우연히 유튜브로 나를 보았다. 행복하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싶어졌고, 방 밖으로 나갈 힘도 얻었다고 한다. 아버지께 나를 꼭 만나고 싶다고 해서 일부러 기차를 타고 여기에 오셨단다. 서울 지리에 익숙지 않아 온 청계천을 다 뒤졌고, 중간부터 듣게 되어 너무 아쉬웠다고. 하지만 만날 수 있어 기쁘다고 하셨다.     


 어떤 일이 생길지 예측할 수 없는 거리공연이지만, 이런 감사한 분들을 마주하는 건 생각지 못한 축복이다.  나의 작은 해금소리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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