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레벌떡 전국여행
여름에는 다른 지역에서의 공연이 많다. 여름은 여행 성수기이지만 거리공연은 비성수기이다. 대신 지방 축제 공연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이건 나만의 요령이라면 요령인데, 혹 다른 지방 공연 일자를 내가 정할 수 있다면 여름으로 부탁드린다. 공연에 비해 이동 시간이 오래 걸려서다. 덕분에 저번 주에는 여수-목포-여수-동인천-강릉-부산 공연이 잡혔다. 잠시 쉬고 목요일부터는 인천-부안-문경-조치원-고양시 공연이 있다. 흔치 않은 강행군이다. 신나기도 신기하기도 걱정되기도 한다.
지방 공연에 간다고 하면 흔히들 부러워한다. 공연은 어차피 30분~1시간 정도이니 거의 여행이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출장이 여행과 같던가. 여행 짐만 챙겨 단출히 떠나는 여행과, 한복 해금 삼각대 카메라 등등을 챙겨 떠나는 공연은 시작부터 다르다. 게다가 보통 공연은 저녁 시간이다. 그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나는 연주 전에 밥이나 커피를 마시면 손이 떨려 고생이라 뭘 제대로 먹지도 못한다. 연주를 마친 밤, 지역 유명 맛집 대신 편의점에나 들러 조촐한 야식을 먹곤 한다.
이동도 고민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인지 오리(자가용-노오랑 스파크!)를 데리고 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한 곳만 다녀온다면 대중교통이 낫겠으나 지방에서 지방으로 이동한다면 응당 오오리가 최고다. 이번 공연은 ‘여수-목포-여수’는 오리, ‘동인천-강릉-부산’은 지하철과 KTX를 이용했다. 다음 ‘인천’은 지하철, ‘부안-문경-조치원-고양시’는 오리다. 이번에는 남해와 서해, 동해를 하루이틀 만에 다 보게 생겼다.
다음은 숙박. 성수기이기 때문에 까딱 잘못하면 공연비도 못 건질 수 있다. 그 와중에 공연은 주말에 많다. 미리미리 저렴한 곳을 찾아 처리해두어야 한다. 가끔, 일정 직전에 성수기 요금이라 가격이 올랐다며 추가 금액을 요구하거나 예약을 취소하라는 전화가 오기도 한다. 어이없고 속상하다. 나는 놀러 가는 게 아닌데.
가장 중요한 연주. 여름에 어울리는 곡들도 연령대별로 준비해둔다. 지방에 가면 연습을 거의 하지 못한다. 연습실이 근처에 없기도 하고, 숙소에서 연습하면 혹 다른 방에 피해를 줄 수도 있다. 만일 새로운 곡을 할 계획이라면, 정신이 없어도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달달달 외워둔다.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이렇게 정신없는 중에 직장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헐레벌떡 바쁜 근황을 들은 친구는 느리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한다.
너는 삶이 축제구나.
순간 머리에 목탁을 맞은 기분이다. 내가 연주하는 이유를 다시 기억해야지. 즐거이 연주하고 와야지. 문득 번잡했던 마음에 선선한 바람이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