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월 20일생이라 학교에 다닐 때 내 생일은 겨울방학 중에 있었다. 학기 중에는 친구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선물 갖고 방문해서 맛있는 것도 먹고 재미있게 놀기도 했지만 내 생일은 언제나 까맣게 잊혀졌다. 아주 드물게 달력에 기록했다가 편지를 보내주는 친구가 있긴 했어도 지금처럼 휴대폰이 있거나 SNS에서 친구의 생일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어서 기껏해야 미역국과 소정의(아주 소정의) 용돈에 만족해야 했다. 케이크를 사다가 촛불을 꽂아서 축하해주는 법도 없었다. 우리 4남매의 생일이 다가오면 엄마는 몸이 아프다고 했다.
“내가 왜 몸이 아픈가 했더니 너를 낳아서 그런 거였어.”
출산을 했던 날이 가까워오면 몸이 아프다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엄마는 태연하게 그렇게 주장하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생일이면 뭐? 내가 낳느라 고생했지.”
그런 이유로 생일에는 항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에는 친구 생일 파티에 갔다가 입이 댓 발 나와서 집에 돌아갔다. 과자 몇 봉지에 케이크 하나만 사면 될텐데, 그러면 나도 친구들이 선물을 가지고 와서 생일 축하 노래도 불러줄텐데, 하고 생각했다. 엄마한테 나도 다음에는 생일날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다고 했더니 엄마가 말했다.
“내가 너 그럴까봐 가지 말라고 했지. 다음엔 보내주나 봐라.”
생일날 왁자지껄하게 축하받고 선물도 받기 시작한 건 대학에 다니면서부터였다. 연애를 하면서는 꽃과 꽤 괜찮은 선물을 받고 좋은 음식을 먹었다.
취업을 하고서는 직장 동료들에게 축하를 받았다. 저녁 수영을 다닐 때는 같이 수영하는 사람들이 내 생일을 핑계 삼아 밤늦도록 함께 술을 마셨다.
어느 순간, 나이를 먹는 게 비천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나이를 먹도록 해놓은 게 없다는 자책에서 비롯한 마음이었다. 이번 생은 망했다는 자기 평가와 후회.
그리고 누군가 나이를 물으면 멈칫하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예전에 누군가 나이 먹은 게 부끄럽다는 말을 했을 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사실 올해는 내 생일을 다들 좀 모르고 지나갔으면, 하고 바랐다. 나이 먹는 게 뭐 대수인가, 하는 뾰족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생일 전날 저녁, 내일 아들이랑 조조 영화를 보러 가야 해서 잊을까봐 미리 보낸다는 Y의 선물을 시작으로 많은 분의 축하를 받았다. 같이 공부하는 사이버대 학우님들, 수영연맹에서 인연을 맺은 심판 선생님들, 우리 학교 선생님, 퇴직하신 선생님, 오래전 같이 근무한 직장동료들, 많이 힘들었을 때 주말 알바를 하던 곳에서 만난 동생…. 몇 년만에 연락을 준 사람도 있었다.
80이 훌쩍 넘은 아빠는 용돈을 부치시고 ‘생일 축하해 ♡♡♡’하고 문자를 보내셨다. 아빠가 보낸 문자 바로 위에는 몇 달 전, 내가 아빠께 화를 내면서 보낸 문자가 고스란하게 남아 있었다. 저녁에는 여자친구를 만나러 나갔던 아들이 비싼 립스틱을 사와서 내밀었다. 아들의 여자친구는 핸드크림을 보냈다.
나를 웃게 한 건 학생들이다.
‘선생님! 생신 축하드려요!’
2학년 남학생들의 담백한 축하 메시지.
‘선생님, 생신 축하드려요! 오늘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시길.’
‘선생님을 만나게 된 건 정말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 생신 축하드려요. 행복하세요.’
2학년 여학생들의 다정한 메시지.
‘따사로운 한줄기 햇빛 같은 은하 선생님, 오늘 생신 맞으시죠? 올해도 진심으로 생신 축하드려요! 올 한 해는 부디 따뜻하고 보송보송한 한 해를 보내시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오늘 꼭 행복하게 하루를 마무리 하시고 미리 안녕히 주무세요!’
야무진 3학년 예비 작가님의 메시지.
‘쌤, 생신 축하드려요. 늦어서 죄송해요.’
갖고 싶은 선물을 골라보라는 졸업생 미소의 메시지도 나를 함박웃음 짓게 만들었다.
또 한 살 더 먹는다고 구깃구깃해졌던 마음이 활짝 펴졌다.
꽁꽁 언 마음을 따스하게 녹여주는 건 결국 타인이 건네는 다정함이 아닌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