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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으니 Aug 07. 2020

 목표, 나를 나답게 하는 힘

 꽂히면 바로 실행하는 나

 "참 너 답다." 과연 내가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되짚어 보았다. 색깔이 분명한 사람들에게 사용하는 말 "너 답다." 나의 색은 흐릿해서 "나 답다"라는 말을 못 들어봤을까?

까짓것 내가 정의를 해 보지 뭐. 나 다운 것은 무엇일까?


멀리 돌아 국민학교 때로 돌아가 보자. 나는 있는 듯 없는 듯 티도 나지 않던 조용한 아이였다. 그러나 그 기준은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한 기준이다. 나는 당시 조용하지 않았다. 내 평생 가장 엄마 아빠에게 애교를 부리던 사랑스러운 수다쟁이였다. 남들이 보는 나와 내 가족이 보는 나, 그리고 내가 보는 나는 모두 다르게 정의된다.


중, 고등학생 때를 돌이켜보자. 나는 여중, 여고를 나왔다. 이성 친구를 만날 기회도 없었고 외부 활동도 거의 없었기에 학교, 집만 왔다 갔다 하는 모범생 아이였다.  여기까진 우리 부모님의 기억 속의 나의 중, 고등학생 때 일 것이다. 과연 내가 정의하는 나도 그런 모습이었을까?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열심히'의 기준이 워낙 상대적인 개념이라 누군가에겐 정말 '열심히'하는 학생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공부하는 척하는 시간이 많았던 것뿐이다. 이성 친구를 만날 기회가 없어서 대신 나는 체육 선생님을 열렬히 좋아했다. 그리고 그 표현 또한 매우 적극적이었다. 총각 선생님이었고 15살 차이가 났었는데, 그 당시에는 매우 진지하게 결혼까지 생각했다. 체육 선생님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던 나의 모습을 보았다면 이성친구도 만나지 않고 공부만 하던 아이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대학 때로 넘어가 보자. 대학 때 나는 중, 고등학생 때 한을 풀기라도 하듯 입학 후 한 달 도 채 되지 않아 남자 친구를 사귀었다. 첫 연애여서 엄청 빠져들었다. 그때 그 연애 후 내 연애관이 바뀔 정도로 너무 진을 뺀 연애였다. 그 후에도 몇 번의 연애를 하였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편이었다. 혼자일 땐 친구들과 대부분 시간을 보내다가도 연애를 하면 또 생활 패턴이 달라진다. 나와 연애를 하던 상대방들이 바라보던 나와 대학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 보는 나는 또 다를 것이다.


회사 입사 후 배치된 첫 부서에서 같이 일하던 선배는 회의를 하던 중에 나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씨 의견은 뭐예요?" 난 그 당시 내 의견을 밖으로 꺼내는 것이 매우 어려웠고, 내 생각은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렇게 말 없고 수동적이었던 나의 이미지는 그 부서의 선배들에게 기억되는 내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내가 4년 차 제일 일 잘한다고 착각하던 시기에 다른 부서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를 알던 사람도 없고 일도 잘한다는 자신감도 붙었기에 마음껏 의견을 발산하였다. 회의 중 의견이 부딪히면 논리를 대며 내 의견을 관철시키기도 했다. 모든 의견에 적극적인 의견을 내던 나, 그때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정의할까?


사회생활에서 만난 다른 사람이 바라보던 나는 조용하거나 말이 없거나 얌전하고 내성적인 단어가 어울렸다. 나 역시 그런 모습이구나 받아들이며 30년 가까이 살아왔다. 그렇지만 내면의 나에게 다른 모습의 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몇 번의 일화가 있다.


대학 첫 MT를 떠나는 날 관광버스에서 신입생으로서 한 마디씩 소개를 하고 노래를 하거나 장기자랑을 해야 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나는 '어차피 해야 하는 거면 그냥 하자.'라는 마음으로 임성은의 '미련'이라는 약간 뽕끼가 있는 노래를 쌩목으로 불러제꼈다. 그 순간 분위기는 반전이 되고 그때 나에게 노래를 시켰던 과대 선배는 내가 엄청 잘 노는 아이인 줄 알았다고 했다. 회식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있었다. 십여 년 전 회식의 끝은 늘 노래방으로 마무리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거하게 취했던 나는 폭발적인 성량을 자랑하며 노래도 뽐내고 춤도 추며 그야말로 나를 내려놓고 놀았다. 그때 함께 자리에 있던 나를 처음 보는 임원은 "저 친구는 정말 잘 노네."라는 말을 남기셨고, 부장님은 그 말이 신기했던지 그 후 몇 번이고 부서 사람들에게 그 말을 옮겼다.


대학생 때 소개팅을 몇 번 하진 않았지만, 한 번은 그 반응이 너무 색달라서 기억이 선명히 난다. 친한 친구가 남자 친구의 친한 친구를 소개팅해주는 자리였다. 그래서 나는 상대방의 첫인상이 좋지 않았음에도 최선을 다해 그 시간을 보냈고, 그 결과 소개팅 남은 내가 '엽기적인 그녀'의 그녀 성격을 닮았다는 평을 해주었다. 일반적으로 듣던 나에 대한 평과 정 반대여서 매우 신선했다.


회사 입사를 위해 임원 면접을 진행할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때도 난 최선을 다해 내면의 나를 끄집어내어 재치 있는 답을 하고 화기애애하게 끝냈다. 한 임원분이 마지막에 해주 신 말이 기억난다. "성격이 이렇게 밝아서 SW 개발만 할 수 있겠어요?" 어떤 의도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대략 알 것 같았다. 그때 그 소개팅 일이 떠올랐다.


말이 없던 내 모습도 활기차게 놀던 내 모습도 모두 나였다. 그 차이가 있다면 목표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던 것 같다. 부모님에게 재잘거리며 애교를 부리던 꼬마는 아빠의 무서운 모습을 미리 차단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다. 소개팅에서 활발하게 보였던 나는 친구에게 미안해하지 않기 위한 목표가 있었다. 대학 신입생 MT에서 무반주 노래를 신나게 부르던 나는 분위기를 띄워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입사 면접 자리에서는 당연히 입사하고자 하는 목표로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목표가 있었기에 가끔 열정적인 내 모습이 나왔던 것이다.


나 다움을 정의하는 것은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나에겐 '꽂히는 목표'였다.


40세가 되어 '글을 쓰는 삶'에 꽂힌 3월 이후로 5~6개월 만에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지금 나를 만난 SNS 이웃들은 나를 이렇게 표현한다. "열정이 여기까지 전달되네요." "정말 뭐든 잘하시네요." 어쩜 이렇게 여러 가지를 멋지게 해내고 계신가요!" "직장 다니며 저게 가능하다니! 너무 멋진 거 아니에요?" 등등. 과거의 나를 알던 사람들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지금도 나는 남 앞에 나서는 것이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내가 꽂힌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계속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나를 드러내기가 두려워 SNS라고는 일기처럼 쓰던 블로그가 다였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브런치, 블로그, 인스타 심지어 유튜브까지 개설해서 운영하고 있다.


브런치에는 나의 가족 이야기를 쓰고 내 삶의 이야기를 쓴다. 다음 메인화면에 노출되었을 때 두려움 반 설렘 반이었다. 악플이 달렸을 땐 또 어떠랴. 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나는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고, 글로 악플을 다는 사람들에게 선언했다. '정중히 덧글은 사양합니다.'라는 글을 쓴 후 더 이상 악플은 달리지 않았다.

인스타에서는 가족사진과 나의 사진을 공개하고 일상 사진을 고스란히 노출한다. 최근엔 나를 알아가는 글쓰기를 진행하며 나의 과거사부터 상상력까지 동원한 글을 매일 쓰고 있다.

유튜브에는 나의 일상생활을 녹화하여 보여주는 Vlog도 올리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나의 목소리로 드러냈다. 아직은 직장 때문에 얼굴까진 드러내지 못했지만, 언젠가 내가 꽂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내 얼굴도 드러내는 날이 올 것이다.


이 모든 건 꽂히는 목표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나를 변화하고 움직이는 힘은 바로  목표에서 나온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그게  다운 삶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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