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회사원H Sep 09. 2021

05. 유배지에서의 생활.

지금은 내려놓아야 할 때.

" 어? 회사 다니고 있었네? 너무 조용해서 몰랐네!"

-그러게, 내가 많이 조용하긴 지. 아직 다니고 있어.


회사 카페테리아에서 만난 동료의 말에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오래 다닌 익숙한 회사도 유배지가 되면 모든 생활이 달라진다.


본부 이동 전과 후로 나는 달라졌다.


사무실 안에서 종종걸음을 걸으며, 출납 마감시간에 맞춰 전표를 내미는 일도, 영업사원들과 서류 문제로 언성을 높이는 일도 없다.


대리점 문의전화에 뭐든 확인해주려 하는 다산콜센터 같은 생활도 없다.


물론, 내가 이곳으로 이동되고 나서 고객센터가 별도로 개설되어 업무담당자가 모든 민원을 처리할 필요가 없어졌다.


본부 이동이 후에도 나는 실 이동이 두 번이나 더 있었다.

(1년도 되지 않아 실이 바뀌고, 또 바뀌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겪고 나서 2개월을 휴직한 후 복귀한 직장은 내겐 무척이나 낯설었다.


그 잠깐이라면 잠깐인 기간 동안 사람도 분위기 공기까지모두가 바뀐 것 같았다. 기분 탓이었을까?


발령이 난 부서의 실장님 첫인상은 긴 휴가였다.

휴일을 포함해서 10일 정도 자리를 비우셨던 것 같다.


부서에 팀원들과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하고, 나는 어떤 일을 해야 될지.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에게 주어진 자리는 주변이 전혀 채워지지 않고 정리되지 않은 텅 빈 곳이었다.


본부가 달라져 처음 본 사람들 대부분. 그곳은 같은 회사 안에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이었다.


사실, 모바일 본부는 타 본부에서 궁금해하는 그런 곳이었다.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랄까?


꿈과 모험의 세계.


끼가 다분한 통통 튀는 다양한 똘아이들이 모여.

(입사초에는 회사가 전쟁터라는 생각으로 밀리터리 복장으로 출근했던 한 똘끼 했던 아이)


이번에 만들 앱은 말이야.

이런 콘셉트로 생각해봤어.

내가 대충 생각해본 스토리는 말이야.


TV 드라마에서 보는 것과 같이 자유스러운 분위기는... 개뿔, 나이 드신 분들이 모두 모여 이런 앱을 사용은 해보셨을까? 과연, 관심은 있으실까 그런 곳이었다.


뻘쭘해하는 나에게도 반가운 얼굴은 있었다.

같은 본부 내 다른 실의 실장님이 먼저 다가와 주시며 말을 걸어 주셨다.


 "얘기 들었어. 이제 좀 괜찮아졌냐? 우리 본부로 왔구나. 어느실이야? 우리 실로 오지. 우리 쪽은 일이 너무 힘들어서 안 넣어줬나?"


며칠 뒤,

휴가에서 돌아온 실장님의 첫인상은 날카롭고 그다지 좋지 않았다.

살가운 것을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날이선 말투에서부터. 눈빛까지.

회사에서 버린 문제아를 자신이 받아준 것이라 생각하시는  느껴졌다.

그래도 나는 감사하다고, 잘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항상 여직원을 볼 때 눈빛이 위아래를 훑는 경우가 많았다.)


필자는 사람들의 행동과 특징 관찰을 잘하는 편이다.


주변인 보여주기 식 환영회와 생일 축하도, 본인이 휴가를 다녀오셔 선 부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는데 같은 부서라 안 줄 수 없어 저에게도 주셨었죠.
엄청 생색을 내시면서 말이에요.
그래도 감사했습니다.
향초도, 목도리도 모두 집에 그대로 있습니다.
아, 다른 이들에겐 페라 oo를 나눠주곤,
저에게만 안 줄까 하다 그냥 선심 쓰듯 주신
이름 없는 불량 초코파이는 회사 책상에 두었더니 누군가 집어 먹었더라고요.
(저만  빼고 먹을 것을 모두 나눠주고 하셨을 때는 매번, 많이 민망했어요. 아. 남는 빵 딱 한번 나눠주셨구나. 비록 초콜릿같이 별거 아닌 거라도 전 실장님은 챙겨 드렸는데 말이죠:D)
원래 받은 사람은 기억을 잘 못한다던데.
제가 그런 기억력은 좋아요.


새로운 앱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새로운 앱이 출시되었다는 기사를 접하면 무조건 깔아보는 편이다.(단, 게임은 제외다. 왜냐!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게임을 못하니깐.)


타회사의 앱을 사용하다 오류와 개선점이 있어서 고객센터에 스샷을 떠서 올렸다는 것은 비밀이다.
아마도, 직원들은 피곤했을 텐데... 이 자리를 빌어 죄송하다고 전한다.
사용자 입장으로 오래도록 사용하고 싶은 애정으로 그런 거였다.


우리 회사에서 처음 오더 앱이 나왔을 때 먼저 깔아서 주문해 보았을 사람들 중에 하나로 출근길엔 회사 앞 커피숍에서 회사 오더 앱으로 커피를 주문하여 출근을 하고, 개선점을 대표님께 말씀드린 적이 있을 정도로 관심이 있었다.


그런 본부에 왔으나 정확한 포지션 없이, 외주 업체가 투입되어 앱을 만들고 있던 부서인 이곳에서 내가 맡게 된 일은 외주 디자이너 분과의 프런트 구성 부분에 대해 협의하여 아이콘을 추가하는 일이었다.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한때는 제품 디자인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캐드를 해보려 일러와 포토샵을 아주 잠깐이나마 배운 적이 있어 나에게 디자인은 아직도 관심 분야 중 하나이다.


그래서 요즘은 취미 삼아 집에서  캔버스에 추상화를 그리곤 한다.


실장님께서 오후 4시에 갑자기 당일 야근을 하라시면 했고, 주말에 출근을 말하셔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도 출근을 했다.

(사실, 나는 돈을 더 준다고 해도 주말 출근은 싫다. 쉬지 않으면 안 되는 집순이 저질 체력 때문이다.)


실장님이 요청하시는 앱 사용 매뉴얼을 만들고, 테스트 업무를 하였다.


외주업체는 대표부터 시작해서  모두 어린 친구들이었는데, 기일에 맞춰 일들이 진행되지 않아 회의시간마다 가뜩이나 험악한 실장님의 얼굴은 더 날카로워졌다.


조곤조곤 외주업체에 따지며, 모든 회의는 날이 서 있었다.


그는 모두의 분위기를 살벌하게 만드는 전문 스나이퍼였다.


회의시간은 보리타작을 당하듯 모두 하나같이 침묵을 지키며 고개를 숙였다.


결국 오더 프로젝트는 정상적인 오픈을 하지 못한 채 사용을 접었다.


사실, 기술이 부족한 업체 선정도 문제였고 내부 직원의 무관심. 그리고 윗선에 잘 보이기 위한 허울뿐인 기능과 모든 것이 허접하기 그지없었다.


새롭게, 시작해보자. 우리만의 느낌으로.


TF팀을 만들어 앱의 새로운 이름을 짓고, 시작한 배달앱 만들기 프로젝트.


평소 별명을 짓거나, 웹소설이나 랩 가사를 쓰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그 팀에 합류되어 배달앱의 콘셉트를 지을 정도로 열정을 쏟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에도 망했다.


자취생으로 배달앱을 자주 쓰는 나는 배달음식도 많이 시키지만, 키트(쿠킹 박스)를 꽤 많이 주문하는 편이다.


우리가 만드는 배달앱에는 배달음식뿐만 아니고. 다양한 키트(쿠킹 박스) 구입 코너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쿠킹박스로 만든  로즈마리 새우감바스


제일 큰 문제는 촉박한 시일과 회사의 투자가 부족했고, 무엇보다도 앱을 만들 수 있는 전문적인 기술자가 없었다.


앱을 알리는 광고가 1도 없으면서 자연적으로 잘될 거라 생각하는 건 도둑놈 심보라고 생각했다.


나는 한동안 배달앱에 도른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빠져있었다.(사실은 지금도 그렇다.)


배달앱 가맹점 리스트에 뜨는 이미지를 그림판이나 ppt로 한 땀 한 땀 작업해서 올리기도 하였다.


평소에 독특하고 재미있어 보이는 UI/UX가 있으면 눈여겨보고, 스샷을 떠 놓고 이런 부분으로 이용되어도 되겠다 생각도 해보고. 그것이 몇천 장 가까이되었다.


필요한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버릇처럼 하다 보니 남의 앱을 쓰다가도 오류가 나면 관련된 내용을 캡처해서 표시를 한다거나 하는 습관이 생겼다.


배달앱뿐만 아니라, 인앱 되어있던 상품권 판매 메뉴도 만들어 놓고 버려지는 것이 아까워 가끔, 글을 끄적이던 개인 블로그에 직접 앱을 사용하는 방법과 스토리 후기를 적기 시작했다.


후기를 본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자 이웃 요청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조회수도 조금씩 늘기 시작했고, 다행히도 앱의 상품권 판매량도 점점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04. 직장 내 괴롭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