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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회사원H Sep 10. 2021

06. 조직 개편이 되었다.

조직의 쓴 맛.

이틀 전 회사 그룹 게시판에 조직개편이 공지되었다.







폭풍 전야는 무서우리만큼 고요했다.


20대와 30대 초반 개편시기엔 누가 승진을 하게 될까의 설렘도 있었지만 30대 후반으로 갈수록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내가 속한 본부에서 해온 일들이 그동안 적자를 많이 봐온 터라 이번에 본부가 공중분해가 된다 어떤 업무는 없어지고, 누구살아남는다더라 등의 카더라 소문이 무성하더니 드디어 게시판이 난리가 났다.


짜여진 사람 퍼즐들.



몇 명 강등이 되었고, 라인을 잘 타고 살아남은 사람들과 필요가 없어져 흩뿌리듯  버려진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버려지는 사람이 내가 될 수도, 나와 가까운 사람이 될 수도 있으니까.


한 회사를 오래 다니다 보니 마치, 물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버려지는 것을 보았다.

선택되지 못 해 버려지는 사람들.

나 또한, 내가 속한 부서의 사업을 접으면서 부서가 사라지기도 했고 지난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이곳에 와서 여러 실을 돌게 되었다.


일 년도 되지 않은 상황에 3번이나 적응할만하면 바뀌어 버렸으니 할만한 일은 받지도 못했고, 똥 치우는 일 정도가 지금의 일이었다.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다.


가해자가 실장으로 있는 부서로 발령이 났다.


1년  만에 생긴 일이었다. 

그동안, 이곳에서 쥐 죽은 듯 살았다.


할 수 있는 일들에도 욕심내지 않으려 노력했고, 모두 내려놓으라는 주변의 말들에 내려놓을 게 없을 정도로 버렸다.


그러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불안한 마음에 손이 덜덜 떨려왔다.

사자굴에 다시 던져진 생쥐꼴이 된 나는 이제 어떡해야 하지?


비상시 먹던 약으로는 불안함이 해결이 되지 않아 다시 병원을 찾았다.


선생님, 마음이 조금 버틸 수 있게 부탁드립니다.


나쁘게 살지 않았고,강하게 하고 싶은 말을 시원하게 내뱉으며, 살지도 못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하며, 조금 손해 보는 삶을 살았음에도 삶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너무 속상했다.


회사의 배려라며 자리는 아직 그분 가까운 자리로 옮기지는 않았지만, 가해자에게 매일 결재판을 들고 옆자리에 앉아서 결제를 받고 업무를 설명할 때마다 긴장되고 불안한 표정은 그나마  마스크로 가려져 다행이지만, 티 내지 않으려 참고 있던 나는 자리로 돌아오면 식은땀으로 온몸을 적시곤 한다.


나는 아직 가해자가 너무나 힘들다.


마음이 힘들어 아침마다 불안함에 약을 먹고, 잠들 수 없어 잠들기 전에 약을 먹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 두렵기만 하다.

가해자는 이런 고통을 알고 있을까?

그도 지금의 나와 똑같은 마음을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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