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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회사원H Oct 05. 2021

16.답은 정해져 있다.

알고 있어도 모른 척했을 뿐...


"점점 인지능력이 저하되는 거 같고, 일에 집중이 안돼요. 눈물이 흐르기도 하고, 안 그랬는데 오늘은 분노가 막 느껴지더라고요."


-사람이 문제인데 , 약은 더 이상의 도움이 되지 않아요. 답은 알고 있잖아요.


의사 선생님의 말씀차갑고, 단호했다.

트라우마.
과거 경험했던 위기나 공포와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당시의 감정을 다시 느끼면서 심리적 불안을 겪는 증상을 말한다.


나는 얼마 전부터 나를 괴롭혔던 가해자와 함께 일하고 있다.


똑같은 일에 대해 결제를 받지만,

문제가 전혀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결제를 받으려면 매번 기본 평균 15분 정도의 남들에게는 아주 자상한 안내로 보이는 지적질과 훈계를 받고 있다.

(엑셀 칸이 너무 넓지 않아?부터...)

그럴 때마다 내가 아무 감정 없는 ai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가식자와 도른자들이 많다.


판매 정보와 동일하게 정산된 내역을 똑같이 비교한 데이터 첨부에 통장 입금된 내역까지 결제를 올리지만, 믿을 수가 없다고 하는 이야기를 결제를 받을 때마다 들어야 하는 기분이란... 자기 자신을 믿기는 하는 인간일까?


2주에 한 번씩 병원을 찾아 상담과 약을 받고 있다.


어쩔 수 없이 가해자를 업무상 대면해야만 하는 나의 불안한 마음을 버틸 수 있게 하는 약이다.


가해자와 다시 같은 부서가 된 지 한 달이 지났고, 노조에서도 사측에 2차 가해로 보인다는 의사를 공문으로 전한 것도 2~3주는 지난 듯하다.


사측은 당사자와 대화를 나누어 보겠다고 하였다지만 내게 아직까지 아무런 대화의 시도는 없었다.


로봇 같은 인사담당자의 감시하는 듯 자리들을 훑고 가는 모습만 매일 눈에 띄었다.


이틀 전 퇴근시간이 다 되어 노조 측 담당자가 나에게 잠깐 사측과 대화를 하자고 하였다.


6시가 다되어가는데  사측 담당자는 오지 않았다.

노조 측에서 전화를 하니 10분을 더 기다려달라고 했다.


불안한 마음일분일초도 더 있기 싫은 이곳에 내가 왜? 퇴근시간까지 버려가며 기다려나 하나?


병원 가야 해서 더 못 기다리겠어요.

노조 측 담당자도 사측 담당자에게 말했다.

"퇴근 시간도 지났고, 병원도 가야 돼서 못 기다리겠네요."

회의실을 나오니 밖에 사측 담당자가 서 있었다.


노조 담당자는 퇴근을 했고, 나는 피씨를 끄기 위해 내 자리로 왔다.


사전에 사측과 협의된 내용인가 했는데 사측 담당자가 피씨를 끄고 퇴근하려는 나에게 와서 "왜 보자고 했냐"는 말을 했다.


네가 보자고 했지 내가 보자고 했냐?라고 할까 했지만 어이없음에 할 말을 잃었다.


"내일은 내가 휴가고 , 그다음 날 보죠, 몇 시에 볼까요?"

-세시쯤 어떨까요?

서둘러 가방을 챙기고 피씨를 껐다.


"그런데 아까 병원은 무슨 병원을 가시는 건가요?"

-불안해서 불안증 약 두배로 늘리러 병원 갑니다.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요?"

-전 이만 가볼게요.


멀뚱히 서서 로봇처럼 바라보는 담당자를 제치고 엘베에 오른 나는 정말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했다.


'장난해? 못 들었다고? 어디서 발연기 짓이야. 미친 xx 그의 가식에 짜증이 돋았다.'


노조 측에 사측 담당자가 했던 행동과 말을 전달했다. 그리고 말했다.


또 발연기(헛소리, 모른다고 거짓말)하면, 입을 찢어버릴 거라고!


점심시간 노조 측 담당자를 만나 이야기를 하다 눈물이 터져버렸다.





마감 일에 미친 듯 치여서 병원 예약을 잊고 있다가 예약 안내 문자를 보고 헐레벌떡 도착한 병원에서 선생님을 만났다.


"좀, 어떠세요?"


2주마다 보지만 선생님의 큰 눈이 마스크로 부각되어 보였다.


-불안해서 약이 없어서는 안 될 것 같고, 어제는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어요. 어떨 때는 눈물이 막 나고. 일의 진도도 안 나가고 점점 멍청이가 되는 것 같아요.


"당연하죠. 약을 먹으면 무기력해지고, 잠도 올 수 있어요. 그런 상황에 일까지 잘해야 되는 거라면 약으로는 더 이상 할 수 없습니다."


-방법이 없는 거네요.


"쉬는 걸 권합니다. 꼭 그렇게 약까지 먹으며 버텨야 됩니까? 사측에서 부서변경도 안 되는 건가요? 문제는 그 사람인데..."


-그 사람만 없으면 문제가 없을까요?


"네."


선생님의 눈빛은 화가 담긴 단호함이었다.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며 얻은 건 눈치라 눈빛만 봐도 상대의 상태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이제는 마음의 결정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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