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속도와 닮은 비엔나 빨간 트램
빨간색이었다. 집 앞 정류장 막스메이들링 역에 서는 6번 트램의 색깔. 지하철의 차가운 은색도, 버스의 무난한 흰색도 아닌, 선명하고 따뜻한 빨강. '여기는 비엔나야!'라고 확실히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대중교통에서 창밖을 제대로 본 게 언제였지?’
전주에서 천안까지 편도 2시간. 강의전담교수로 18년간, 일주일에 두세 번은 그 길을 오갔다.
나는 운전을 좋아하지 않는다. 긴 고속도로 주행 후 바로 강단에 서야 하는 일은 나이 들수록 쉽지 않았다. 피곤할 땐 시외버스나 기차를 타기도 하지만, 수업 교재가 많아서 무겁고, 버스와 택시를 갈아타는 게 번거로워 결국 운전대를 잡게 됐다.
운전하면서 창밖을 보는 건, 보는 게 아니라 '확인'하는 거였다. 신호등, 차선, 앞차와의 거리.
그런데 비엔나에선 달랐다. 창밖이 너무 재밌었다. 아니, 재밌다기보단... 자꾸 눈이 갔다. 세세히 보고 싶었다.
‘6번 트램 맞지?’
처음 며칠은 매번 확인했다. 6번, 62번 트램, 그리고 비엔나와 인근 도시 바덴을 연결하는 파란색 BB(Badner Bahn) 트램까지.
트램 노선에 익숙해지던 어느 날, 멍하니 숫자만 보고 올라탔다가 '슈투트가르트 노이'라는 낯선 종착역 이름을 마주했다. 같은 번호여도 행선지가 다를 수 있다는 걸 몰랐던 거다.
‘아, 이거 아닌데...’
황급히 핸드폰 지도를 켰을 때의 그 황당함이라니. 하지만 괜찮았다. 역 간격이 짧아서 한두 정거장 잘못 내려도 걸어갈 만했으니까. 배차 간격도 10분 이내여서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고 해야 할까. 거리를 구경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바람을 느끼고.
전주와 천안의 시외버스 환승 대합실에서 기다린다는 건 '지루함과 번거로움'이었는데, 여기선 '여유'가 됐다.
트램 문은 자동으로 열리지 않는다. 동그란 버튼을 꾹 눌러야 '쉭—' 하고 열린다. 처음엔 낯설었는데, 며칠 지나니 그게 또 재밌었다. 요즘 세상에 이런 아날로그가 남아 있다니.
안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게 벽에 붙은 그림 문자들이었다. 유모차와 휠체어는 어디에, 반려견은 어떻게. 누가 봐도 알 수 있게 그림으로 설명해 놓으니 이방인인 나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좌석 배치도 신기했다. 진행 방향을 보는 자리, 옆 사람과 마주 보는 자리. 고속버스처럼 일렬로 쭉 앉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트램 한가운데엔 유모차 전용 공간이 있었다. 두세 대는 무리 없이 들어가는 넉넉한 공간.
더 놀라운 건, 유모차를 밀며 트램에 오르는 부모들의 동작이었다. 정류장과 트램 바닥이 거의 같은 높이였다. 수평적인 이동이라 아무 걸림돌 없이, 툭 밀면 끝.
‘아, 배리어 프리(barrier-free)가 이런 거구나.’
휠체어를 탄 사람이 탔을 땐, 기관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수동 경사판을 설치했다. 조용하고 자연스럽게.
트램은 기다렸고, 사람들은 기다렸고, 나도 기다렸다. 누구도 불편해하지 않았다. 그게 당연한 것처럼. 시간이 걸려도 느긋이 기다려줄 수 있다는 건, 타인을 향한 배려이자 마음의 여유였다.
나는 관찰하는 걸 좋아하는데, 트램 안에선 볼 게 많았다.
7월은 방학이라 그런지 아이들은 많지 않았다. 대신 아침 트램엔 출근하는 사람들과 관광객처럼 보이는 가족들이 많았다. 어떤 가족은 지도를 펼쳐 들고 뭔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눴다.
오후 트램엔 장을 본 듯한 노부부가 탔다. 할머니가 무릎 위에 올린 장바구니에서 빵 한쪽이 삐죽 나와 있었고,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손을 살포시 잡고 있었다.
해질 무렵 트램엔 헤드셋을 낀 젊은이가 많았다. 무슨 음악을 들을까. 재즈? 팝? 클래식? 어떤 청년은 눈을 감고 고개를 까딱거렸고, 어떤 여성은 책을 읽다 말고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파스텔 톤의 여섯, 일곱 층짜리 건물들. 건물과 건물 사이는 여백 없이 붙어 있었지만, 창틀은 각기 다른 얼굴이었다. 어떤 외벽엔 '1890', 또 다른 곳엔 '1912'가 새겨져 있었다.
‘백 년이 넘은 집에 지금도 사람이 산다니.’
나한텐 경이로움이었다. 전주 한옥마을도 아름답지만, 대부분 복원된 거다. 여기선 백 년 된 집이 현역이다. 물론 보수 중인 건물도 자주 보였다. 어쩌면 그래서 유지되는 거겠지. 낡은 걸 버리지 않고, 고치면서 쓰면서. "낡은 것과 오래된 것은 다르다"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유서 깊은 건물들만 보존하는 게 아니라, 한 세기를 넘나드는 오래된 것들을 담담하게 유지하는 태도가 오히려 비엔나의 매력을 더 빛나게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한국이었다면 모두가 서둘러 뛰었을 텐데, 여기 사람들은 그냥 걸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사람들도 그대로 가던 길을 갔다. 비를 맞으면서도 느긋하게. 급할 것 없다는 듯. 그 여유가 트램 안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
트램의 속도는 느렸다. 시간을 거의 정확히 맞추는 서울의 지하철이나 난폭운전이 흔한 버스에 비하면 느려도 한참 느렸다.
그런데 그게 좋았다. 커다란 창은 도시를 한눈에 담기 좋았고, 느린 속도는 풍경을 놓치지 않게 해줬다. 세 칸으로 이어진 6번 트램은 마치 작은 기차 같았다. 꼼꼼한 장인이 세심한 것까지 신경 써서 만든, 아날로그 감성 가득한 기차.
‘이 트램의 느린 속도는 지금 내 나이와 닮았네!’
스물, 서른 엔 주위를 둘러볼 틈 없이 빨리 달렸다. 놓칠까 봐, 뒤처질까 봐. 마흔 엔 숨이 차올라서 뛰다 걷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쉰을 넘긴 지금은? 아마도 이 트램 속도쯤 되지 않나 싶다. 느리지만 목적지로 가는 과정을 충분히 즐기며 갈 수 있는 속도.
삶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오십이란 나이가 처음엔 무척 낯설었다. 갱년기라는 단어 앞에서도 한동안 당황했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고, '이제 늙는구나' 싶어 서글펐다. 긴 고속도로 주행이 힘들어지고, 수업 전 이미 지쳐 있는 날이 많아졌다. 더 이상 빠릿빠릿하게 일을 해낼 수 없는 게 서글펐다.
그런데 트램을 타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빠른 게 다가 아니구나.
느리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게 있구나.
예전과 다른 나의 속도를 수용하고, 현재에 맞게 삶의 시스템을 새롭게 세팅해야 하지 않을까. 과거와 동일한 방식으로 일하길 고수한다면 일주일 내내 업무를 붙잡고 있어야 할 것이고, 그러다 점점 지쳐갈 게 뻔했다. 앞으로는 나 자신을 소진해 가면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 슬로 라이프! 느리게, 여백을 만드는 삶으로.
드디어 종착역 칼스플라츠에 도착했다. 내리기 전, 잠시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광장을 가로지르는 사람들, 카페테라스의 여유로운 오후, 그 모든 것이 트램의 속도로 흘러갔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속도.
풍경을 놓치지 않는 여유.
무엇보다도, 느림이 게으름이 아닌 선택일 수 있다는 발견.
내 삶도 이 빨간 트램처럼 굴러가면 어떨까.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누군가를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지나가는 풍경을 놓치지 않으면서.
지금은 거창한 행복보다는 소소한 일상이 더 소중하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되었다. 그런 나이에 걸맞는 속도로 삶을 살아야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을 것 같다.
트램에서 내려 칼스플라츠 광장을 걸었다. 빨간 6번 트램이 다시 출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쉭—' 하고 문이 닫히고, 천천히 다음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는 모습.
나도 저렇게 가면 된다.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고. 느리지만, 내가 만들고 싶은 삶의 방향성을 가지고.
전주에서 천안으로 가는 길도, 강단에 서는 시간도, 쉰 너머 앞으로의 시간도.
그래, 이제부터는 트램의 속도로 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