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쉴러 공원과 폴크스가르텐에서
마음이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맡겼다. 도시의 중심부는 이미 몇 번 지나친 길이었고, 그 바깥의 낯선 길목들이 나를 더 부르고 있었다. 곧게 뻗은 대로를 벗어나 구불구불한 골목으로, 이름 모를 공원으로, 의도하지 않은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가끔 즉흥이 예상치 못한 선물을 가져다주는 순간이 있다. 우연이 필연이 되는 사건은 마음 깊숙이 자리 잡는다.
‘어쩌면 오늘 여행, 그런 순간을 만날 수 있을까?’
칼스플라츠(Karlsplatz) 역에서 도심 순환도로 방향으로 걷다가 비슷한 건물들 사이에서 헤매게 되었다. 30분이 넘도록 제자리를 빙빙 돌다가 한 블록 옆, 거기서 쉴러 공원을 만났다. 괴테와 함께 독일 고전주의 문호로 불리는 쉴러의 동상이 공원 중앙에 당당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저 멀리 큰길 건너편에는 괴테의 동상이 희미하게 보였다.
‘뭐야, 저긴 며칠 전에 왔던 왕궁정원이잖아.
괴테와 쉴러를 숨은 그림 찾기처럼 배치하다니! 비엔나가 숨겨둔 퍼즐 하나를 내가 찾아낸 건가?’
도시 설계자의 의도를 알아챈 듯해 혼자 기분이 우쭐해졌다. 시계가 정오를 가리킬 무렵의 작은 공원. 그곳에 펼쳐진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아이보리색 커플이 있었다. 남자는 재킷을, 여자는 원피스를 입고 한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다. 독일어라 무슨 말을 하는지 짐작할 수 없지만, 공기 중에 흩어지는 낮은 웃음과 말소리에는 애정이 묻어난다. 샌드위치를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을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마네(Edouard Manet)가 봤다면 어땠을까. 그가 그린 ‘아르장퇴유 정원의 모네 가족(1874)’처럼 한낮의 여름, 공원의 푸르른 평온함과 두 연인의 다정한 분위기를 비엔나의 도심 속 한 장면으로 화폭에 담았을 것 같다.
또 다른 벤치에는 큰 배낭을 옆에 둔 젊은 여행객이 지도를 무릎에 펼쳐놓고 잠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는 피로와 안도감이 동시에 배어있었다. 문득 십 년 전, 중학생 두 딸들과 함께 커다란 배낭을 메고 헬싱키, 탐페레, 쿠오피오, 세 도시를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쌩쌩했던 그때가 떠오른다. 작년 갱년기로 힘든 일 년을 보내고 난 뒤에는, 업무와 가사 노동에는 구두쇠처럼 에너지를 아껴 최소한으로 쓰고 비타민과 운동으로 하루치 에너지를 최대한 끌어올려야 활동이 가능하다.
분사 밸브가 좌우로 천천히 움직이며 물을 뿜기 시작했다.
시원한 물줄기가 반원을 그리며 초록 잔디와 커다란 나무들을 적셨고, 나무들은 그 물줄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잔뜩 머금었다. 여름 한낮의 열기를 식히는 소리. 쉬이익 쉬이익, 그 리듬감마저 시원하게 들리는 물소리였다. 마침 걷느라 지친 나에게도 오아시스 같은 쉼터가 필요했다. 나무 벤치에 가방을 내려놓고 다른 여행객들처럼 자리를 잡았다. 근처에 있던 슈퍼마켓, 빌라(Billa)에서 산 샐러드와 빵, 시원한 음료수를 꺼내 벤치에 펼쳐 놓았다. 특별할 것 없는 먹거리지만 소풍 나온 아이처럼 입가엔 미소가 맴돌았다.
그때 어디선가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이곳의 풍경을 좀 더 마음에 담고 싶어졌다. 벤치에 등을 기대고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봤다. 파란 하늘 사이로 느릿느릿 흘러가는 구름들. 마로니에 잎들이 한낮의 햇살을 걸러내며 초록빛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진짜 휴식이 이런 건가?’
럭셔리한 호텔 라운지도 아니고,
SNS에 올릴 만한 핫플레이스도 아닌 이곳에서,
계획표에는 없던 이 시간에,
진짜 여행을 만난 것 같았다.
길 건너편에 또 다른 초록이 보였다. 쉴러 공원처럼 예상치 못한 행복이 기다릴 것 같은 기대감에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그곳으로 향했다. 구글 맵에 쓰여 있는 이름은 폴크스가르텐(Volksgarten). 1823년 개장한 ‘시민 정원’이라는 명칭답게, 다양한 사람들의 일상이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일을 마친 정원사가 붉은 플라스틱 빗자루를 어깨에 둘러메고 걸어가고 있었고, 초록 잔디밭에서는 대여섯 명이 원을 이루며 간단한 체조를 하고 있었다. 유모차를 밀며 산책하는 젊은 부모들, 책에 빠져있는 대학생들, 가이드의 깃발을 따라 움직이는 노년의 관광객들까지.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이유로, 이 공간을 지나고 있었다.
폴크스가르텐의 장미 정원은 세상의 모든 장미 종류를 다 모아놓은 듯했다. 다양한 색상의 장미가 무리 지어 핀 정원에는 초록색 의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말없이 앉아 장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화사함이 가득한 그곳에 깃든 조용함이 그 공간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장미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하나하나 들여다보다가, 뭔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장미마다 작은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는데, 수목 정보를 알리는 일반적인 안내판이 아니었다.
“Ich werde dich für immer erinnern.” 나는 너를 영원히 기억할 거야.
처음엔 그냥 시적인 문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장미 한 그루 한 그루마다 모두 다른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천천히 걸으며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마리아, 한스, 루나... 어떤 것은 사람 이름이었고, 어떤 것은 애칭이었고, 어떤 것은 반려동물의 이름이었다.
‘아, 이곳의 장미는 그냥 심어진 게 아니었구나.’
이 장미들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위해 심어진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이, 기억이, 다짐이 뿌리내린 결과였다. 비엔나 시에서 일률적으로 조성한 정원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모여 완성된 진짜 시민의 정원.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이 풍경이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장미들이 마치 수많은 이야기를 조용히 속삭이는 것 같았다. 모두 다른 사연, 다른 시절, 다른 이별과 만남의 기억들 여기 한 자리에 모여 피어나고 있었다.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영원히 함께, 막스"
"우리의 작은 천사, 소피에게"
하얀 플라스틱판에 새겨진 문장들을 다시 읽다 보니, 어떤 마음으로 이 장미를 선택했을지 짐작이 갔다. 누군가는 이별 뒤의 텅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누군가는 말하지 못한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또 누군가는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곳에 한 그루를 심었을 것이다.
그리고 매년 여름이면 그 장미들은 다시 활짝 피어난다. 기억이 사라지지 않듯, 꽃들도 해마다 돌아온다. 개인의 기억이 공적인 아름다움으로 변하는 순간. 한 사람의 슬픔이나 사랑이 다른 이들에게도 위로가 되는 그런 자리. 1909년부터 시민들이 헌수 하기 시작했다는 이 정원은 100년이 더 흐른 뒤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풍성해질 것이다. 각양각색의 장미들이 빽빽이 자리를 채우고, 수많은 이름들이 겹겹이 쌓여 거대한 기억의 숲을 이룰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기억하는 방식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이런 것이야말로 진짜 공공디자인이구나.'
우연히 길을 잃지 않았다면,
무심코 그냥 지나쳤다면,
결코 만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지도 위에 표시된 명소보다 훨씬 진짜 같은, 그런 자리들 말이다.
길을 잃는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더 소중한 것들을 만나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