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슈테판 대성당과 성 피터 성당에서
Wien Oper 역을 빠져나오자마자 느긋이 걸었다. 트램 역에서 10분만 걸으면 되는 가까운 거리였다.
비엔나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슈테판 대성당으로 가는 길. 케른트너 거리(Kärntner Straße)가 보인다. 그 길은 비엔나 중심부 순환도로인, 링 슈트라세의 거리 중에서도 가장 활기찬 메인 거리다. 보행자 전용도로로 이어진 거리에는 온갖 상점들과 카페, 레스토랑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사실 어디로 향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걷는다는 것, 그리고 이 도시가 내게 보여주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거리를 걸으며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한국의 명동거리처럼 사람들이 북적이고, 쇼핑백을 든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다니고, 거리 공연자들이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핸드폰을 켠 사람들이 서로의 앵글에 끼어들고, 마차가 딸랑거리며 지나가는 소리가 돌바닥에 메아리쳤다.
기념품 가게 진열장에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작품이 머그컵과 자석, 엽서로 분해되어 팔리고 있었고, 초콜릿 브랜드인 마너(Manner)의 빨간색 초콜릿 상자들이 비엔나를 하나의 상품으로 포장하고 있었다.
'클림트가 머그컵이 되다니. 예술도 결국 대중화되는 운명인 걸까?'
그러다 맥도널드를 안내하는 대형 사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채도 낮은 초록 바탕에 노란색 M자가 커다랗게 배치된, 그 간판은 중세부터 형성되어 19세기에 지금의 모습을 갖춘 이 거리의 시간과는 다른 리듬으로 박동하고 있었다. 묘한 이질감이었다.
수백 년의 세월이 켜켜이 쌓인 돌길 위에 현대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풍경.
과거와 현재가 서로 밀어내지 않으면서 각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마치 어제의 선을 지우지 않으면서 오늘의 획을 더하는 우리의 삶처럼.
성 슈테판 대성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첫인상은 압도적이었다.
높이 솟은 남쪽 탑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었고, 강렬한 기하학적 패턴의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구워 만든 기와 타일들이 만들어내는 색감은 단순히 알록달록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깊은 녹색과 황금빛 노란색, 검은색과 흰색이 조화를 이루며 지그재그의 기하학적 패턴을 그려내고 있었다.
23만 개가 넘는 이 타일들 사이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독수리 문양이 모자이크처럼 새겨져 있었다. 제국의 힘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그 독수리는 날개를 활짝 편 채 지붕 위에서 도시를 굽어보고 있었다.
'이게 뭐야... 600년 왕가의 위용을 이렇게까지 화려하게 표현한 건가?'
멀리서 봐도 선명한 그 문양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것은 회색 돌과 첨탑으로 하늘을 향한 경건함을 표현했던 유럽의 다른 성당들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이었다. 여기는 색채와 문양으로 오스트리아의 창의성을 표현하고 있었다. 독특함이라는 말도 부족할 정도였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시원함이 몸을 감쌌다. 높은 천장이 만들어내는 공간감은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했다. 하지만 그것이 위축감이 아니라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때로는 작아지는 것이 편안하다. 모든 것을 짊어질 필요 없이 그저 조용히 존재하기만 하면 되니까.
성당 안쪽의 제단 근처에서 촛불을 켰다. 현금함에 5유로를 넣고 작은 양초에 불을 붙였다.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았지만, 그냥 고마웠다.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 준 모든 것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해서도.
잠시 눈을 감고 시작한 기도 대상이 점점 더 넓게 퍼져갔다. 나이 들수록 타인의 무탈을 염원하는 기도가 자꾸 길어진다. 촛불의 작은 불꽃은 성당의 거대한 공간 안에서 오래도록 흔들리고 있었다. 작지만 꺼지지 않았다.
'이 작은 불꽃, 생각보다 오래 타오르네. 계속 켜질 촛불들과 함께 기도가 이루어지길.'
전망대에서 바라본 비엔나는 완전히 다른 도시였다. 오렌지색 기와들이 햇살 아래 부드럽게 물결치고, 그 사이로 초록색 공원들이 섬처럼 떠 있었다. 사람들은 개미만큼 작아져서 각자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보였다.
전망대 풍경은 도시의 끝자락까지 가닿는다.
북쪽을 향해 눈을 더 크게 떠본다. 저기쯤 다뉴브 강이 은색 리본처럼 도시를 관통하며 흐르고 있을 것이다. 강 너머로는 초록빛 프라터 공원이 펼쳐져 있고, 그 위에 비엔나의 거대한 대관람차가 천천히 돌고 있었다. 약 65미터 높이의 그 바퀴는 마치 도시의 심장박동을 보여주는 듯했다. 누군가는 저 위에서 자신의 도시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우리처럼.
동쪽을 따라가면, 먼 언덕 위에 벨베데레 궁전이 옅은 노란색으로 떠 있다. 그 뒤로 비너발트라 불리는 비엔나 숲의 산자락이 희미하게 이어진다. 칼렌베르크카(Kahlenberg) 산도 보였다. 그 산 위에서는 저 도시 전체가 얼마나 작아 보일까.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도나우타워가 252미터 높이로 솟아 있다.
'위에서 보니 복잡해 보이던 길들도 나름의 질서가 있네!'
삶도 그런 것일까. 한복판에 있을 때는 혼란스럽지만 위에서 보면 단순하다.
늦은 오후 햇살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 그 사이로 수많은 사람들이 성당 앞을 무심히 오가고 있었다.
거리로 나와 다시 성당을 올려다보았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잠깐씩 돌아보게 된다.
우리 삶과 닮아 있는 이 성당.
멀리서 보면 아름답고, 가까이서 보면 무겁고, 안으로 들어서면, 조용히 기도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