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후 Jun 27. 2023

초록이들, 처음학교에 뿌리내렸어요

초보티 내지 않아서 고마워요


초록이들 처음학교에 뿌리내렸어요




요즘 일조량이 지나치게 풍부하다. 푸릇한 신록을 보면 힐링이 별거인가 이런 게 힐링이지 싶다. 그러나 한여름은 아직인데 벌써부터 뙤약볕은 곤란하다. 아무리 비타민 D가 좋기로서니 지나치면 뭐든 탈이 생기는 법이다.


우리 텃밭에 어린 초록이들이 눈에 밟혔다. 기세등등한 햇살에 혹시나 말라죽진 않았을까. 시들진 않았을까 걱정스럽다. 우리들 중 누구라도 보는 사람이 메마른 땅이 보이면 물을 주기로 입을 맞춘다.


오늘은 일단 시간적 여유가 생긴 내가 출발선 테이프를 끊었다. 작은 여루에 물을 담아 소꿉놀이 모래놀이하듯 살살 이랑에 뿌려주었다. 내 착각이었을까. 귀여운 초록이들이 입을 벌리고 웃는 것 같다.


습기를 머금은 비닐 속에서 흙이 데굴데굴 구르며 재주를 넘는 것만 같다. 생초보 텃밭 도시 농부에게 소확행의 기쁨을 선사한다. 심은 지도 얼마되지 않은 것만  같은데 호박은 쑥쑥 잘도 자랐다. 소장이 훈수를 둔 벽에 심은 것이 정말 신의 한 수이다.


심지어 한쪽에선 노란 꽃을 피워내었다. 누가 오이꽃이 꽃이냐 반문하였던가. 고 입술을 찰싹 때려주리라. 오이꽃도 엄연한 꽃이다. 저 꽃이 지면 분명

오이가 빼꼼히 몸을 내밀기 시작할 것이다. 얼마나 예쁠지, 상상만 해도 대견하다.


한여름 누룽지에 물 말아 고추장을 찍어 바른 풋고추를 아삭아삭 씹고 싶다. 요 윤기 나는 고추모를 보니 분명 싱싱한 고추를 맘껏 깨물  수 있을 듯하다. 마트에서 사 먹는 고추는 어쩌다 보면 말라서 버리기 일쑤였다. 요 풋고추는 먹고 싶을 때마다 갓 따면 될 터이니 그럴 일은 없으리라.


우리 식구는 식감이 뭉정뭉정하다며 가지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나는 다르다. 삶아 무쳐먹어도, 쪽쪽 찢어서 냉국으로 먹어도, 가지볶음으로 먹어도, 가지에 튀김옷을 묻혀 튀겨도 다 맛있기만 하다. 요 가지가 더 자라면 여름엔 긴 가지를 수확할 수 있으리라. 나 혼자 독식할 소중한 일품요리로 거듭날 것이다.


내가 주는 단물 마시고 아프지 말고 쑥쑥 자라거라, 초록이들아. 이 초보 엄마가 열심히 사랑을 줄 터이니 모자라면 살짝 필요한 것을 귀띔하거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