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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만 되면 생각나는 남자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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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후

스승의 날에 바치는 글짓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은 가슴을 쥐어짜는 고행이다. 하물며, 검은 오라를 뿜어내며 무저갱처럼 어두운 눈빛을 가진 초등학교 고학년 여자아이의 메마른 가슴에 꿈이라는 씨앗을 심는 일은 얼마나 숭고한 여정인가. 스승의 날이 다가오자, 문득 그 고귀한 과업을 떠올리며 가슴이 뜨거워진다. 만약 그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꿈이라는 단어조차 모른 채, 해가 뜨면 그늘 속으로 숨고, 해가 지면 음울한 어둠에 삼켜져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상념이 밀려와 눈시울을 적신다.


그분은 내 인생의 여섯 번째 해, 초등학교 6학년 담임 선생님이셨다. 마르고 키 큰, 센 바람에도 우아하게 걷는 모델 같은 자태가 떠오른다. 소풍날 찍은 단 한 장의 사진, 그 빛바랜 추억 위에서 선생님은 여전히 빛난다. 산성, 바람에 살랑이는 나무들 사이에서 선생님의 햇살처럼 따뜻한 눈빛이 내 어린 영혼에 꿈이라는 불꽃을 지폈다. 기억의 성 안에 깊숙이 간직하는 유물이다. 손끝으로 사진을 어루만지면서 그 해의 보살핌을 다시 느낀다.


선생님은 ‘글짓기’라는 말을 사랑하셨다. ‘글쓰기’라는 낱말 대신, ‘글짓기’라는 생명력이 넘치는 말을 사용하여 우리(문예반 7 명)에게 글의 숨결을 불어넣으셨다. “글을 짓는 것은 네 마음에 꽃을 피우는 거란다.” 선생님 말씀은 내 가슴에 뿌리를 내렸다. 글짓기는 당시 내 안의 혼돈과 두려움과 외로움을 어루만지고 그 속에서 희미한 빛을 찾아내는 성스러운 의식이었다. 선생님은 그 의식의 인도자로 내 손을 잡고, 떨리는 연필심으로 세계와 마주하게 해 준 분이다


재작년에야 알았다. 선생님이 ‘충북글짓기지도회’를 창립한 열여덟 명의 초등교원 중 한 분이셨다는 것을. 그 진실은 마치 오래 묻혀 있던 보물을 발견한 듯한 전율이었다. 선생님은 나만의 스승이 아니셨다. 평교사에서 교장까지 이르는 동안 수많은 아이들의 삶을 거쳐 갔고, 그 손길은 저마다의 동심에 꿈의 씨앗을 뿌렸을 것이다. 선생님이 길러낸 문인이 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나처럼 그 특별한 가르침으로 어둠을 뚫고 빛을 찾은 이들이 셀 수 없으리라 믿는다.


스승의 날이 오면 가슴 한쪽이 아려온다. 선생님은 일찍이 하늘의 별이 되셨다. 오래전, 세상에서 사라져 찾아뵐 수 없다는 사실이 심장을 쥐어짠다. 선생님께 무릎을 꿇고 싶다. “선생님, 덕분에 꿈을 이루었어요. 늦었지만, 저 해냈어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고 싶다. 선생님은 알고 계실까. 하늘 어딘가에서 예의 그 온화한 미소로 날 지켜보고 계실까. 별빛이 반짝일 때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잘했다, 네 글이 참 예뻐졌구나.”


글 한 편 제대로 짓고 싶다. 선생님이 심어준 꿈을 선생님께 사랑받을 ‘글짓기’로 갚고 싶다. 내 글이 세상 어딘가에 닿아 누군가의 가슴에 작은 불씨를 지피길 소망한다. 그것이 선생님께 바치는 가장 진실한 헌사가 아닐까. 선생님의 정신은 내 안에 여전히 살아 꿈틀대고 있다. 글을 짓는 매 순간, 선생님은 내 곁에 계신다면 좋겠다. 제대로 지을 수 있게.


선생님이 뿌리내린 꿈이 곁뿌리가 뻗었다. 나는 미력한 힘이나마 같은 꿈을 가진 성인들을 돕는 부캐를 갖고 있다.

작년에 1호 작가가 탄생하였고 올해 또한 2호, 3호가 탄생했다. 그늘을 일부 걷어냈다며 행복한 글짓기를 하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스승의 날 아침이다. 그 소풍날의 사진을 또 꺼내본다. 바람에 흩날리던 나무 잎새들 소리와 빛나던 선생님의 미소가 여전히 내 가슴에서 꿈을 속삭인다. 참 스승이란, 한 사람의 영혼에 불을 지피고 꺼지지 않도록 지켜봐 주는 존재이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당신이 심어주신 꿈은 내 안에서 아직도 꺼지지 않았습니다. 이 글은 선생님께 바치는 간절한 글짓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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