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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서 즐거운 비명이 쏟아져 내립니다

즐겁게 배웁니다

by 은후

쏟아지고 덩달아 쏟는



햇살은 요즘 부드러운 티라미수 같다. ‘T’가 아닌 ‘F’인 바람이 피아노 연주곡처럼 정원을 감싼다.


거리를 걷다 보면 시선을 빼앗기는 곳이 있다. 울타리를 휘감으며 흐드러지게 피어난 장미들 때문이다.


노란 장미는 태양처럼 환하게 웃고, 수줍은 소녀의 볼 같은 분홍 장미는 은은히 미소 짓는다. 청초한 자태로 고요히 빛나는 흰 장미 옆에선 벌이 저돌적으로 윙윙댄다. 열정의 탱고처럼 심장을 불태울 듯한 붉은 장미는 그야말로 타오른다.


저마다 다른 색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미들은 울타리를 넘어 이웃한 이팝나무와도 은근한 정을 나눈다. 자연이 빚어낸 오월의 예술 가운데 백미는 장미가 부르는 생명의 찬가일 것이다. 주어진 경계를 타고 오르는 덩굴은 자유를 갈망하는 영혼처럼 뻗어간다.


어떤 장미는 대담하게 울타리를 훌쩍 넘어 지나가는 이와 눈맞춤하는 곡예를 펼친다. 꽃송이는 화사한데 줄기는 거칠어, 후시딘이라도 발라주고 싶어진다. 장미는 고고할 법도 한데, 마치 이웃과 수다를 나누고 싶다는 듯 미소 지으며 눈을 마주친다.


장미는 미색이 다른 색으로 오월을 꼼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팜므파탈 같다. 각자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뽐내면서도 서로를 질투하지 않고 어우러져 더 큰 조화를 빚어낸다.



5월은 친화력이 우수한 장미의 무대다. 위로 아래로 옆으로. 꽃잎 하나하나가 보석처럼 빛나고, 향기는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퍼진다. 아침 이슬에 반짝이는 장미는 세상을 향해 당당히 고개를 들고 하루의 시작을 응원한다.


목적지를 향해 걷다가 장미에 눈길이 사로잡히면 잠시 멈춰 그 향기를 음미한다. 자동차 소음은 잦아들고, 사람들의 말소리는 멀어져 고요한 숲 속에 들어선 듯 평온해진다.



장미가 속삭인다.


“느리게, 깊이 봐.

오늘이 이렇게 아름다워.”


장미는 삶의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스승이다. 가르치려 들지도 다가오라 하지 않고도 넌지시 삶의 자세를 알려주는 이 꽃 앞에서 배운다.


천천히 피어나는 것.

조용히 나누는 것.

자기 빛을 사랑하는 것.


아무 말 없이 바람과 햇살 사이에서 맘껏 장미가 보여준다.

그 품 안에 초대받은 마음으로 고개를 숙인다.

아름다움 앞에서 감탄할 줄 아는 자세로.


장미의 연주를 듣노라면, 이 곡도 따라 쏟아진다.


https://youtu.be/qqXUpe3jlkA?si=806wtT7EFurDWBU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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