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은 입을 벙싯하다 만다
오후 여섯 시 십오 분이다. 정확히 이 시간이 되면, 아파트 402호의 부엌에는 쌀을 씻는 물소리보다 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태무 씨, 그러니까 아버지의 재킷 소매가 벽지를 스치는 소리였다. 그는 퇴직 후 근 삼 년 동안 매일같이 이 시간에 이 옷을 입었다. 회색의 낡은 작업복인 옷은 그의 몸에 딱 맞았지만, 그의 영혼에는 전혀 맞지 않는 무거운 갑옷 같았다. 그는 퇴근하는 척, 혹은 출근하는 척, 그 옷을 입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어머니와 딸 사이를 느린 걸음으로 지나쳤다. 그의 무기력함은 끈적끈적한 액체처럼 공기 중에 퍼져 나가 모두의 호흡에 스며들었다.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그의 손은 쉴 틈이 없었다. 그는 항상 뭔가를 닦았다. 식탁 모서리, 싱크대 수도꼭지의 물방울 자국 심지어 이미 깨끗한 유리창까지 닦았다. 그의 청소는 위생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필사적으로 확보하려는 강박적인 의식이었다. 그가 닦아내는 것은 눈에 보이는 먼지가 아니었다. 자신의 실패와 무기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오점이었다. 닦으면 닦을수록 그 오점은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이상한 법이다. 그의 작업복 소매가 벽을 스칠 때마다 벽지에는 미세한 마찰음이 남아 이 집에 사는 두 여자에게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소음이었다.
딸인 은서는 그 소리가 들리면 방 안의 책상으로 도망쳤다. 그녀는 서둘러 헤드폰을 끼고 자신이 편집하는 인문학 원고를 펼쳤다. 오늘 그녀가 읽는 문장은 장 폴 사르트르의 것이었다. '타인은 지옥이다.' 은서는 이 명제가 가족에게는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곳은 지옥이 아니다. 아무도 서로에게 관심 없는 무중력 상태의 섬들의 집합이었다. 지옥이라면 적어도 격렬한 감정의 교류나 고통이 있어야 하는 거다. 반면 이곳은 그저 무심함과 침묵만이 지배했다. 그녀의 아버지의 무기력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적극적인 악(惡)이 아니다. 주변의 모든 활력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정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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