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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흩어지는 아침 풍경

그의 낡은 습관에 가린 비밀

by 은후

2장.



오태무 씨의 하루는 빛보다는 소리로 시작되었다. 오전 여섯 시 삼십 분. 알람 소리가 울리기 1분 전, 그의 몸은 본능적으로 침대에서 미끄러져 나왔다. 그는 언제나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나야 했다. 알람 소리는 그에게 준비되지 않은 시작을 의미했고, 지난 3년간 그가 온몸으로 거부해 온 무기력의 상징이었다. 소리보다 빠르게 움직여야만 그는 자신이 아직 시간을 통제하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었다.


새벽의 집은 차가웠고 습한 공기는 그의 폐를 눌렀다. 그는 가장 먼저 거실로 향했다. 어제저녁 늦게까지 닦아놓은 거실 바닥과 유리창, 식탁을 다시 한번 훑어보는 것이 그의 첫 번째 의식이었다. 그는 손바닥으로 마루의 미세한 온도를 확인했다. 혹시 밤사이에 외부의 불순한 기운이 침투하지는 않았는지 검사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의 청소는 이제 위생 관념을 넘어선 종교였다. 청소하지 않은 공간은 그의 마음속 무기력함이 언제든 자리 잡고 증식할 수 있는 위험 지역이었다.


그가 옷을 갈아입는 데 들어간 시간은 정확히 7분이었다. 회색 작업복은 낡았지만 깨끗하게 다려졌다. 그 옷을 입을 때라야 그는 비로소 '오태무'이라는 자신의 역할을 다시 덧입는 듯했다. 이 작업복을 입음으로써 자신의 실업 상태와 그로 인해 가족에게 끼치는 정서적 공백을 덮어 가리려 했다. 이 옷은 그에게 과거의 성실했던 자신을 증명하는 유일한 훈장이자 현재의 무능함을 숨기는 위장술이었다.


7시 30분에 딸 은서가 방에서 나왔다. 그녀는 운동복 차림에 커다란 헤드폰을 목에 걸고 있었다. 아버지는 딸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딸 역시 아버지를 지나쳐 현관으로 향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언어도 오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딸의 부재를, 딸은 아버지의 존재를 외면하는 완벽한 공존 방식이었다. 은서는 매일 새벽 인근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녀에게 그 공간은 책을 읽는 곳이 아니었다. 이 집안의 공기와 무기력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유일한 항구였다. 그녀가 집을 나서는 순간, 아버지는 안도했다. 통제해야 할 변수가 하나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딸이 나간 후, 아버지는 부엌으로 향했다. 자신이 마실 커피를 내렸다. 커피콩을 갈아 물을 붓고 한 방울씩 떨어지는 과정을 묵묵히 응시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미세한 기쁨을 누렸다. 느리고 규칙적이며 결과가 예측 가능한 행위다. 그의 삶에서 통제 가능한 것은 이제 이런 사소한 것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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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사람. 이성보다는 감수성이 좀 있어 아름다운 문장을 꿈꿉니다. 글 이력은 짧습니다. 길게 잇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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